'진짜' 관광명소가 된 전주 한옥마을을 가다
'진짜' 관광명소가 된 전주 한옥마을을 가다
  • 월간토마토 김선정
  • 승인 2011.11.18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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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관광 지도에 나오지 않는 생각지 못한 것을 만나는 곳

오랜만에 찾아간 전주 한옥마을은 관광객을 위한 ‘진짜’ 관광명소가 돼 있었다. 한옥 앞을 가로질러 깔끔하게 깔린 길과 새로 깔리는 길, 가로수 앞 흐르는 물까지, 관광객 마음을 사로잡기에 알맞은 깔끔한 경관을 자랑한다.

그리고 예쁜 외관을 갖췄지만 비싼 카페, 밥 먹으러 오라는 한정식집 사장님이 반갑게 관광객을 맞이한다. 전주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맛 좋은 호두과자집도, 인사동에도 있는 실타래 엿장수도 이곳에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수도 빵집은 언제 이곳에 왔는지 그럴싸한 외관으로 한옥마을에서조차 같은 빵 맛을 전수하고 있다. 여느 관광 명소처럼 상업화의 짙은 향기를 피해 갈 수 없는 전주 한옥마을이지만, 그럼에도 자꾸 가 보고 싶은 건, 전주 관광 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아직 생각지 못한 것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1박2일간 만난 여러 풍경을 담아 보았다.

사람들

대형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 한옥마을 외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한옥마을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경기전 안에는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문화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여러분, 경기전이 어떤 곳인 줄 아나요?”
“….”

대답없는 학생들에게 그래도 프로의식을 갖춘 전문인으로서 설명을 포기할 수 없는 해설사는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둔 곳이에요. 그럼 어진은 무슨 뜻일까요?”

아이들은 해설사 질문을 듣는 둥 마는 둥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이들 주변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아빠와 서양인 연인 한쌍이 벤치에 앉아 있다. 서양 커플을 향해 “Hi! Hello! Welcome to Korea!”를 외쳐대는 귀여운 중학교 소녀들 뒤로 아까 그 관광버스에서 내린 듯한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 단체 관광객이 지나간다.

예쁘게 물든 단풍처럼 알록달록 아주머니들의 등산복 색이 화려하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떨어지는 전주향교 안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비 신랑, 신부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향교 안 한옥 대청마루에는 일일 판소리 체험으로 진지하게 소리를 배우는 아저씨가 앉아 있다.

한옥 마당에서 자기 키보다 더 긴 화살을 들고 투호를 하려는 아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사람들만 오세요.”라며 골동품 경매를 하는 아저씨, 그리고 한옥마을 주말 프리마켓에 나와 붓글씨를 쓰는 할아버지. 전주 한옥마을에 모인이 모든 사람이 차가워진 전주 한옥마을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한옥마을의 밤과 한옥에서 하룻밤

한옥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목대를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자 낮에는 그렇게 많았던 사람도 드문드문 보인다. 온종일 길에 서서 움직이는 안내센터가 돼준 안내봉사자 아저씨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됐다.

영업을 끝낸 상점이 하나둘 문을 닫자 한옥마을에서 가장 북적거리던 태조로가 금세 조용해진다. 일주일 전 미리 예약해 두었던 한옥체험시설 <소담원>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뜨뜻하게 데운 온돌 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으니 스르르 잠이 밀려온다. 방안에 TV가 없어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눕게 된다.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막아주는 튼튼한 창호지 사이로 새어드는 빛을 바라보다 기분 좋게 잠을 청한다.

새벽까지 식을 줄 모르는 뜨뜻한 온돌 바닥은 맘속까지 데워준다. 단, 한옥에서 보내는 밤의 단점이 있다면 한옥은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방에 묵은 50대 아저씨 네 분의이야기가 다 들린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대도 다 들린다. ‘음, 저 아저씨가 백두산에 올라가 봤구나. 아, 저 아저씨는 중국 사막에 다녀왔구나.’ 쉿! 한옥에서 묵고자 한다면 조용해야 한다. 옆방 자는 사람에게 이야기 다 들릴라.


골목길

“뭐 찍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사진도 많이 찍데.”
“사진 찍는데 비켜 줘야지.”

할아버지 두 분이 익숙한 듯 타지에서 놀러 온 관광객에게 골목길 한쪽을 내주고 잠시 기다린다. 그리고는 이내 좁은 골목 끝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주 한옥마을은 무엇보다 골목을 도는 즐거움이 있다. 골목에서 만난, 세월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는 담벼락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헤매듯 골목을 돌다 보면 우연히 동네 주민과 잠시 마주치기도 하고 누군가 담벼락에 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주인이 집을 비운 지 오래된 모양인지 대문에 넝쿨이 올라온 집도 눈에 들어온다.

어느 골목에 들어서니 ‘버린 건 아니니 가져가지 마라.’라는 쪽지가 붙어 있는 소파가 담벼락 밖으로 내쳐진 채 놓여 있고 옥상에 빨래를 널어놓은 집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좁게 이어지는 골목길을 돌다 보면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이름 속에 감춰진 평범한 한옥과 그냥 지나치질 못할 소소한 재미가 담긴 공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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