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세 부문 수상 <돼지의 왕>
부산국제영화제 세 부문 수상 <돼지의 왕>
  • 월간토마토 박숙현
  • 승인 2011.12.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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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일으킨 연상호 감독과의 만남 "영웅, 우상을 바라지 말라"

파란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부문 상을 휩쓸더니, 얼마 전에는 2011 독립영화 사상 최단 기간 1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최초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는 <돼지의 왕>.

영화는 사업실패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황경민이 15년 넘게 연락 끊긴 중학교 동창 정종석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폭력적이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두 주인공은 친구 김철과 그에 얽힌 끔찍한 사건, 그리고 그 속에 감춰왔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불편하다, 잔혹하다.’라는 평가 속에서도 관객이 발길이 이어지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지난 11월 26일 대전아트시네마가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뜨거운 작품을 향한 관객들의 적극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다음은 연상호 감독과 관객이 나눈 대화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관객 1 연세 있으신 분들은 영화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릴 거 같다. 시나리오를 쓴 세계관이 궁금하다.

연상호 감독(이하 연 감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하고 비슷할 수 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설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돼지의 왕>의 배경은 1990년대다. 그리고 1990년대는 1980년대와는 다른 시대다.

1980년대가 민주 대 독재, 민주는 선, 독재는 악의 대결구도였다면 90년대 김영삼 대통령부터 그게 깨졌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뀐 건 없다. 문제는 민주 대 독재가 아니라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대결이었다.

1990년대에 386 민주화 세력이 많은 혼란을 겪었다. 정태춘 선생님의 ‘92년 장마 종로 깃발’에서 느껴지는 사라진 허무 같은 게 있었다. ‘뭔가를 바꿨는데 바뀐 게 없다.’라는 그러한. 그래서 그 감성, 허무를 다루고 싶었다.


관객 2 영화에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관객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감독의 취향인가?

연 감독 취향이라기보다는 사회를 보는 시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 시선을 취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보통 애니메이션을 안 하더라도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하게 지낸다. <똥파리> 양익준 감독과 <추격자> 나홍진 감독 같은. 하는 방식이 달라도 시선이 비슷하면 친하게 지낸다.

애니메이션이 꼭 가족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어릴 땐 이런 유의 애니메이션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이 가족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애니메이션을 암울하게 만들면 안 될 이유가 없다.

관객 3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돼지와 개로 나눌 수 있는데, 각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연 감독 개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면 악랄한 개는 관심이 없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 중 하나다. 개인의 문제를 개인이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다. 예를 들어 노숙자를 보면 그들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

하층민이 겪는 문제가 복잡한 문제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돼지에게는 아무래도 우상에 대한 부분이 컸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문제를 뭔가가 나타내서 해결해주길 바라선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우상에 기대지 말고 각자의 문제를 개개인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걸. 우상에 기대하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였다.

관객 4 제목이 특이하다. <돼지의 왕>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파리대왕> 책이 떠올랐다. 제목을 어떻게 지었나?

연 감독 돼지라는 설정이 잡히면서 <돼지의 왕>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근데 짓고 나서 보니 <파리대왕>과 비슷해서 더 좋았다.

두 가지 뜻이 있다. 바보의 왕이라고 하면 하나는 그중에서 가장 왕 다운 사람이라는 의미고, 또 하나는 바보 중의 바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처음에 돼지의 왕은 돼지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남에게 먹이기 위한 존재이자 가장 쓰임을 많이 받는 돼지로 나온다.

관객 5 영화에 철이, 종석, 경민 이렇게 세 캐릭터가 등장하는 데 모두 다 불행하다. 셋 중 누가 가장 불쌍하다고 보나? 그리고 셋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연 감독 아무래도 철이한테 애착이 갔다. 철이를 그리려고 스태프끼리 경쟁할 정도였다. 그리는 것만으로 행복한 캐릭터였다. 철이, 종석, 경민에는 내 모습이 투영돼 있다. 다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이지만 나랑 비슷한 듯싶다.

관객 6 시스템에 반하는 시도를 했지만, 결말은 허무하게 끝났다. 자조적인 마음이냐 아니면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이냐?

연 감독 당연히 변화를 기대하고 만들었다. 철이라는 우상의 모습에 종석과 경민은 몰입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상이 나타나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짱돌을 들고 데모를 하기보다는 멋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는 데 그런 성취는 성취가 아니다.

개개인이 원하는 게 있다면 개개인이 싸움해야 한다. 학생식당이 맛이 없다면 맛없다고 지랄발광을 해야 한다. 누군가 나타나면 그를 지지하는 것만으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방관자들에 대한 얘기이자 방관자들을 저주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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