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잎이 파릇파릇한 여름에 만난 두 나무는 가지가지마다 풍성하게 자란 잎, 넓은 수관 폭(가지가 벌려 있는 정도)으로 그 멋진 자태를 뽐냈다. 이번에 만나 본 나무는 지금껏 보았던 웅장한 느티나무와는 다른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 나무, ‘옥계동 느티나무’다.
골목 느티나무를 만나다
사람들이 집을 비워 한창 조용해진 오후 두 시쯤 옥계동 동네 골목에 들어섰다. 한 열 발자국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뻗은 옆 골목길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느티나무 앞에는 보호수라고 쓴 비석이 안내판 구실을 하고 있었다.
수령이 220년인데 보호수로 지정한 연도가 1982년이니 약 250살 됐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골목에 홀로 서 있는 느티나무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으나 이 조용한 동네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느티나무는 바로 옆 2층 집 창문에서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에 손이 닿을 만큼 가깝게 자라나 있다. 수관 폭이 그리 넓지 않아 다른 느티나무와 비교하면 왜소한 몸이지만, 이 ‘골목 느티나무’는 좁은 길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느티나무와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초록빛 예쁜 색깔을 자랑했을 ‘골목 느티나무’ 잎은 낙엽으로 변해 포댓자루에 담겨 있었다. 그나마 있는 잎은 바람이라도 불면 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나무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맞추지 못하고 찾아가게 돼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나무 주변에 차가 몇 대 주차돼 있어 사진을 찍고자 골목을 서성였다. 나무 앞에 세워져 있던 차가 드디어 빠졌다. 이제야 ‘골목 느티나무’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것이 동네와 어우러진 느티나무를 감상할 수 있어 더 좋다.
한때는 잘나갔던 골목 느티나무
좁은 골목이다 보니 다른 노거수들처럼 나무 아래에 벤치나 평상이 놓여 있지 않지만,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좋은 편이다. 느티나무 바로 앞에 있는 ‘둥구나무 경로당’은 이 동네 어르신들이 산책 삼아 매일 찾아오는 곳이다. 경로당에서 만난 친절한 할머니들 덕에 ‘옥계동 느티나무’에 대해 잘 아는 둥구나무 경로당 회장이자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최판순 할머니를 만났다.
“여기가 원래 집이 없었어. 다 논밭이었어. 포도밭, 하천이 있었는디. 그랬는데 인자, 다 논밭이고 그랑께, (나무) 심을 자리가 없어 여기다 심은 것 같어. 회초리만 한 걸 하나 심어 놓은 것이 이렇게 큰 겨. (이 나무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알어. 나무에 매년 제사를 지내던 할머니가 이사 가고는 이적까지 제사를 안 지냈어. 근디 노인들이 아파 쌌고 꼬슬랑꼬슬랑 하길래 그래서 제사를 지내야겠다 싶더라고. 내년부터는 음력 정월에 제사 지낼 겨.”
최 할머니 말대로라면 ‘골목 느티나무’는 주위가 온통 논과 밭이었던 당시, 마을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마을을 지켜 주는 둥구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봄에 자란 느티나무 싹을 보며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집안의 화목과 건강을 빌기도 하면서. 비록 지금은 골목을 돌아야 보이는 ‘골목 느티나무’지만 말이다.
[둥구나무] 마을 입구나 한복판, 또는 그 부근에 있는 오래되고 큰 나무는 흔히 둥구나무라고 부른다. 배산임수와 장풍득수(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요건)를 이상으로 하는 마을 공간에서 둥구나무는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중요한 구실을 하며, 그것 자체가 마을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