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엄마' 박진영 작가의 희망 발견
'돼지 엄마' 박진영 작가의 희망 발견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2.01.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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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150마리의 멱따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희망과 쾌락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라고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명언은 시대를 초월해 독하게 살아남았다. 돼지한테 ‘탐욕과 재물’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다.

남 이야기 같지만, 우리 역시 웃고 있는 빨간 돼지 저금통 등짝에 동전을 꽂고 배를 찢는 가학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뱃속에 움켜쥐었던 동전 무더기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저금통 주인 얼굴에는 찰나의 희망과 포만감이 번진다.

그렇게 따지니 돼지는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캐릭터를 지닌 셈인데, 때때로 예술과 만나 한층 견고해진 희화성과 상징성을 발견한다. 인간처럼 넥타이를 매는가 하면, 변기에서 므흣한 표정으로 반신욕 하며 우스꽝스러운 인간상을 극대화하거나 제사상에 올라갈 운명을 예측이라도 한 듯 염세적이고 시니컬한 돼지로 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할 기세로 얼굴을 들이대는 새끼돼지와, 돼지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돼지엄마’ 박진형 작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그는 돼지로부터 본능적인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다.

“돼지로부터 본능에 가까운 희망 엿봤죠”

예전에 그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1초, 2초 전, 1분 전 등 가깝게 스쳐 지나온 풍경을 속도감이 느껴지도록 다뤘다. 그러다 작품의 주제의식과 삶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에라, 돈이나 벌자는 심산으로 농장에 들어갔다. 사람이라곤 구경할 수도 없었던 그곳에서 돼지 150마리와 석 달여간 동거했다.

그의 말을 듣자 성장 한만큼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고질적인 우울함이 배어 있겠구나 싶었다. 혹여 그렇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는 “농장 안에서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젠간 도축장에 갈 몸이라 해도 울타리 안에서 돼지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요. 사람도 잘 따르고 밝아요. 죽음이 엄습하리라는 생각에 불안해하지 않아요. 오로지 밥 먹는 그 순간에 집중할 따름이죠.”

순간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며 사는 돼지들의 작은 세계를 엿보며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사람도 가치기준에 따라 만족감이나 행복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단다.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150마리가 한 꺼번에 멱을 따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귀가 먹먹해요. 사료를 주면 그 소리가 점차 줄어드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리만 남았을 때, 이윽고 사육장이 조용해졌을 때 본능에 가까운 희망과 쾌락을 느끼죠.”

캐릭터가 아닌 영혼의 일부인 ‘나의 돼지’

작업 초반인 2007년엔 코카콜라와 돼지를 함께 그리는가 하면, 콧구멍에 만 원 꽂은 돼지, 떨어지는 돈다발 속 돼지를 그림으로써 대량생산체계, 상업주의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했다.

2009년부터는 배경에서 부연 설명하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오직 단순명료한 배경에 돼지 얼굴을 강조해 희망을 비롯한 그때그때 감정을 담았다. 설사 돼지에게서 우울한 단면을 보게 되더라도 이는 삶의 근원적 고민(언젠간 돼지‘고기’가 되고 말 거라는)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변화 탓이라는 거다.

전시가 열린 한 카페 벽면 곳곳에 걸린 그 그림은 장소적 특성에 맞추느라 아담한 작품이 많았으나 평소엔 100호(160cm×130cm) 크기를 즐겨 그린단다.

“호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큰 그림에서 느끼는 감흥은 더 크거든요.”라는 게 그의 변이다.

단색 배경에 돼지가 다이지만 작업은 고단한 반복으로 이뤄진다. 화폭에 그림을 그렸다가 다른 색으로 실루엣을 뭉개고 그 위에 다시 그리는 식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전 색에 덧입힌 색이 우러나오며 작업 전 들었던 수많은 생각 역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림이 사골처럼 진득하겠다.’라는 실없는 농을 던지며 그와 그림 속 돼지가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뒷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약간 장난스러우면서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눈과 눈매가 안경 너머 보이는 작가 눈과 무척 닮았다. 작가는 피식 웃으며 “많이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사람 얼굴에서도 눈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듯, 그의 그림 역시 눈이 핵심이다.

“눈에 신경을 많이 써요. 죽을 것처럼 고민하다가도 장난기가 가득하죠. 특별히 어떤 이미지로 표현해야겠다는 고정관념은 없어요. 그때그때 제 기분 상태나 생각이 담기죠.”

사람 얼굴이 제각각인 것처럼 돼지 역시 생김새가 제각각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여타 작품 속 돼지가 ‘캐릭터’라면 박진형 작가가 그린 돼지들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작가를 닮았나 보다. 상상 속이미지가 아닌 애완동물이자 가족으로서 세포를 일부분 나눠 가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돼지를 풍자, 희화한 작품은 이미 많잖아요”

농장에서 지낸 건 3개월 남짓, 돼지를 그린 건 벌써 5년째다. 사람들은 가끔 그의 작품에서 그동안 봐오고, 그래서 익숙한 희화와 풍자를 원하기도 한다.

“넌 왜 돼지로 그런 것들을 표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인격화한 돼지나 고사상에 오른 돼지 머리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원하시죠. 그럴 때마다 전 ‘그런 작품은 이미 많잖아요.’라고 웃어요.”

왜 제목을 달지 않느냐는 질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폭을 자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장이 지닌 구속력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잖아요. 내 안에서 많은 생각을 매듭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보다 평준화, 객관화된 평가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거든 요. 그래서 전시할 때는 그림 밑에 제목이나 설명은 달지 않아요.”

그는 분신이나 다름없는 돼지를 통해 ‘당연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고 의도적인 희망은 아니다. 오히려 다분히 본질적이다.

“우리는 행복할 때도 행복한지 모르고 불평하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되게 행복하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어요.”

본능에 다가선 행복을 보여주는 대상으로 자본주의의 표상, 돼지를 선택한 건 우연인 동시에 작가로서 거품을 걷어내겠다는 또 다른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참 고집스러운 청개구리 스타일인가 보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화백’이라는 단어예요. 그 단어가 주는 위압감이 싫어요. 그냥 저는 ‘페인터’나 ‘작가’, ‘화가’ 정도가 딱 좋아요.”

갤러리뿐 아니라 카페처럼 대안 공안에 전시하는 것 역시 그림이 고상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다.
“운동복 입고 갤러리에 가진 않잖아요. 제 작품은 관객들이 편하게 보고, 느꼈으면 해요. 감상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요.”

개인전은 다섯 번째라는 박진형 작가, 지난해 초부터 중국 북경798예술구에 그림을 보내는 등 대외적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직 철학적인 면이 완성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 언젠가 가슴 뻐근한 ‘완성작’을 만나기 위해 지금껏 그래 왔듯, 그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고단한 붓질을 이어나갈 터다.

“지난 5년 동안 돼지를 그렸지만, 이번 전시가 저에겐 터닝 포인트예요. 제가 느낀 모성애나, 여러 쾌감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완성작이라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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