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청청현 철거와 대전 골목길재생사업
카페 청청현 철거와 대전 골목길재생사업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2.02.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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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원룸 외 답이 없다…원룸 일색 변화 속 사업 어떻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대흥동에서 소개팅이나 맞선을 본 사람이면 가장 먼저 떠오를 그곳, 대전평생학습관 맞은편 골목에 있는 카페 ‘청청현’. 중년의 문지방을 갓 넘긴 세대라면 카페 청청현을 두말할 나위 없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한다. 그곳이 조만간 자취를 감춘다. 카페 주인장이 청청현 문을 닫고 다른 이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글쟁이가 청청현에 갔을 땐 철거를 앞두고 유리창을 부수는 중이었다. 며칠 뒤엔 철제 펜스대신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렸다. 대전시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가게라는 스티커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발 빠른 대흥동 주민 덕에 달려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청청현 주인장은 “몸이 아파 카페를 돌볼 수 없었다.”라며 “대흥동과 어울리는 몇 안 되는 건물이라 카페로 남기고 싶었으나, 결국 인수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다들 이 동네는 이제 원룸밖에 답이 없다고들 하더라.”라고도 했다.

청청현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시형생활주택(원룸)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한다. 그 말에 숨이 턱 막히지만 청청현은 문화재가 아닌, 엄연한 개인 자산이다. 매매하거나 철거하는 것 모두 완전히 개인 자율의사이다. 안타깝긴 하나 건물주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공간을 잃음이 더없이 씁쓸한 건 대흥동 파이를 구성하는 몇 안 되는 조각이 또 하나 떨어져 나갔다는 아쉬움과 탄식일 터다.

심지어 청청현이 있는 대전여중 일대는 지난해 대전시에서 사업구상 발표까지 마쳤던 골목길재생사업대상 가운데 한 곳이다.

본래 대흥동에서 골목길재생사업을 시행한다 해도 간판 재정비, 특화거리 상징 조형물 설치, 그 이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애초 대흥동다운 모습을 간직한 가게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청청현이 사라지고 또다시 원룸 일색이 돼버렸을 때 대전시는 과연 무슨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허울뿐인 골목길재생사업을 이어 가려다 언론의 뭇매를 맞고 다른 곳으로 바꿔 지정하거나 기존 원도심 활성화 사업과 중복되면 아예 대흥동 섹터를 빼버릴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건물 하나 철거한다 해서 아직 시작도 안 한 골목길재생사업까지 끄집어내는 이 글이 침소봉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 옛날 소개팅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야 서운하다지만 청청현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본래 대흥동다운 것이 대부분 그렇다. 유명 작품의 배경도 아니요, 랜드 마크가 있는 것도 아닌 대흥동에 향수를 느끼는 건, 다름 아닌 과거의 ‘나’와 ‘너’, ‘우리’를 만날 수 있어서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쌓여 세월을 만드는 곳, 사소한 일상이 낡은 동네 대흥동을 더욱 빛나게 한다.

대흥동 낡은 건물 대부분이 3~4년 뒤 재건축을 염두에 두고 있고, 이미 프랑스 문화원과 카페 비돌 주위를 도시형 생활주택이 에워싸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조만간 이 거리에 붙여진 ‘문화예술특화거리’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원룸특화거리’가 넘겨받을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유재산의 매매를 행정기관에서 간섭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전시가 골목길재생사업으로 대전여중 일대를 지정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면 적어도 이 일대 자원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시장 조사와 구상 정도는 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랬다면 뒤늦게 당황할 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을 일 없을 테니까.

수익형 주택 건축 붐, 철 지난 상업 지구는 미래가 없다는 비관론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대흥동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는 게 안타깝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는 무기력감에 이를 즈음이면 고민은 그야말로 뫼비우스 띠처럼 끝이 없다.

대흥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사람은 이에 대해 “대전시에서 대전여중 일대를 골목길재생사업 구간으로 지정했다 한들 상인 중 누가 알았겠느냐.”라며 “대안은 없으나 지역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아직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따라서 문화행위,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를 행정기관이 아닌, 지역에서 먼저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느냐며 손쓰지 못하는 대전시 행정력만 탓한다고 해서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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