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 월간토마토 이수연
  • 승인 2012.06.22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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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한 점포라도 문이 닫혀 있으면, 시장이 돌아간다는 느낌을 줄 수가 없어요”, “주일에는 쉴 수밖에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기 때문에 그건 절충안이 없어요”, “그럼 열쇠를 놓고 가세요. 제가 열고 닫아 드릴게요” “그래. 장사를 대신해 줄 수도 있고”

▲ 남부시장 골목 젊은 사장님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 2층 카페 나비 앞 골목에 젊은이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다. 이들은 2층에 가게 하나씩을 맡은 ‘사장님’이다. 지난 5월 4일, 5일 개업파티를 열고, 계속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논의가 끊이질 않는다.

남부시장이 ‘같이’ 만들어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내 가게 문을 남이 연다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부시장에 들어찬 가게는 이미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함께’ 다듬어 가야 할 모두의 과제인 것이다.
▲ 시장내 손으로 만든 작품을 팔고 있는 상가의 모습
전주에 가면, 남부시장도 있어
1층은 여느 시장과 다를 것 없다. 빼곡 들어찬 가게에 상인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 둘 쳐다본다. 복작복작거리는 모습이 여느 시장과 다르지 않다. 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다 멈칫했다.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회색 여닫개 뿐이다. 멈칫하다 안쪽으로 고개를 빼고 들어가 보니 문 열린 곳이 보인다.

제일 처음 눈에 띈 간판은 ‘그녀들의 수작’이다.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뜻과 함께 ‘꿍꿍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가게 안에 놓여 있는 하얀 식탁 위에 ‘라푼젤’처럼 머리가 긴 여자들이 모여 앉아 킥킥대는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뿐만 아니다.

재미있는 이름이 가득하다. 전주 남부시장에는 ‘미스터리 상회’, ‘뽕의 도리’, ‘범이네 식충이’ 등 총 열두 점포에 열일곱 명의 젊은이가 있다.
▲ 미스터리 상회


‘이음’이 이어준 인연
이들을 모아 남부시장에 터를 잡고 교육을 받도록 한 단체는 앞서 소개한 ‘이음’이다. 이음에서 전주 ‘문전성시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한다. ‘문전성시프로젝트’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침체한 전통시장에 문화체험 공간을 접목해 활성화를 꾀한다는 꿍꿍이다. 사업 대상지 선정 기준은 사람의 마음을 끌 만한 이야기가 있고, 근처에 사람을 불러들일 만한 요소와 전통시장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음은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부터 ‘남부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두었다. 500년 전통인 남부시장은 2층 점포도 문 닫은 곳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1999년 화재로 인해 일부 점포가 닫히면서 거의 모든 상점이 운영을 중단했다.

그러나 ‘한옥마을’이 가까워 관광객 유치가 수월한 이 공간은 버려두기 아까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음은 2층 공간에서 포럼을 열기도 하고 ‘만남의 장’으로 이 공간을 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한 예로 남부시장 옆 옥상 ‘하늘정원’을 들 수 있다. 이음의 김병수 대표는2006년 전주청소년문화예술교육단 단장으로 있으면서 3일간 도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늘정원 꾸미기 여름캠프'를 열었다. 지저분한 재래시장 옥상이 상인과 청소년, 관광객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 부명상회 뉴타운
무대를설치하기도 하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를 마련해 놓기도 했다. 또 같은 해 남부시장 내 식당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상점 간판을 깔끔하게 정비하는 등 시장상가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예술제를 열어 지속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행사로는 사람들을 계속 시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이에 이음은 2011년 문전성시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되면서 남부시장에 시범점포 두곳을 운영했다. 시범점포를 들여놓고 그 공간에서 ‘밤맛남’(가을밤 맛나고 쏠쏠한 만남)이라는 야시장을 열었다.

청년 야시장은 이벤트성을 띤 행사였지만 2012년 추가로 선정할 점포 열 곳을 위한 ‘시험’이었다. 2011년 그렇게 두 점포를 운영하면서 보인 가능성을 바탕으로 2012년 열 개 점포가 더 남부시장 2층을 채웠다.


적당히 벌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실험
“어느 가게 한 곳만 잘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모두가 ‘적당히 벌어서 잘 살자.’라는 것이 저희 목표예요.” 이음에서 남부시장 팀을 따로 꾸려 나온 이승미(여, 27세) 씨의 이야기다. “‘청년몰’이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 공동공간이기 때문에 전체를 그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처음 이음에서 프로젝트를 위해 청년을 모집했을 때 60~70명 정도가 모였다. 그 전해만 해도 그 정도는 되지 않았다. 청년들이 창업을 ‘대세’나 돌파구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창업을 하지 않아도 대안이 있는 사람은 뽑지 않았다. 학생보다는 정말 ‘업’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해보고 싶었다. 이후 지원이 끊겼을 때도 ‘장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장사를 구체화할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도 어려움이었다.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복되는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런지 신기한 물건이 많다. 식충식물, 테이크아웃 볶음밥, 보드게임 술집, 한방 찻집, 뽕잎 수제버거 등 파는 물건 하나하나에 장사꾼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남부시장 청년몰의 전경 모습
“졸라, 힘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해보고 싶다.”
기존 상인이 처음부터 반겼던 것은 아니다. 어린 너희가 ‘시장’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는 것이다. 기존 ‘문전성시프로젝트’는 직접 상권을 꿰차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문화행사를 벌이고 강연을 하는 등의 형식이었다.

그러니 자리를 잡고 상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청년몰’을 달갑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처음 카페 ‘나비’가 들어설 때만 해도 시장에서 무슨 ‘카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가 나던 2층이 매일 달라지는 것을 보며 이제는 상인들도 그들의 노력을 예쁘게 본다.

사업이 선정되면서 지저분한 점포를 매일 쓸고 닦았다. 전주 시내를 돌며 폐가구를 주워다 본인의 몸을 가꾸듯 꾸며 점포에 들여놓기도 했다. 그렇게 청년이 발품을 팔아 만든 것이 남부시장 2층이다.

▲ 만지면 사야 합니다 라는 문구의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승미 씨는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엄청’ 힘들었고, 앞으로도 ‘너무’ 힘들 것 같지만, 계속 같이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다. 누구 ‘하나’가 아니라 ‘모두’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매달 ‘얼마’라는 기준치를 두고 그만큼을 벌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만큼씩 벌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 곳에서나 ‘잠깐’ ‘반짝’은 그냥 이벤트로 머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놀이’를 할 생각이 없다.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실험하고 부딪혀 갈 것이다. 그것이 그곳에 모인 청년의 특권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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