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나다_한 번 앉으면 일어날 수 없어
공간을 만나다_한 번 앉으면 일어날 수 없어
  • 글·사진 성수진 사진제공 김주태
  • 승인 2014.01.24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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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STON GALLERY

점심시간,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하나둘, 홀스톤 갤러리에 모인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과자를 손에 들고 온 학생들은 바닥에 철푸더기 앉는다. 한 학생은 스피커와 연결된 잭에 휴대전화를 꼽고 음악을 튼다.

“‘피카소’ 틀까?” 친구들에게 묻는 말에 선생님이 대답한다. “‘피카소’라는 노래가 있어? 누구 노래야?”, “빈지노요.”, “김진호? 한 번 틀어봐.”

이윽고 빈지노의 노래 ‘Dali, Van, Picasso’가 흘러나오는 이곳은 홀스톤 갤러리다. 호수돈여자고등학교 입구 바로 왼편, 반지하에 자리한 ‘진짜’ 갤러리다.

▲ 홀스톤 갤러리 입구
학생이 주인인 기획 갤러리
반지하로 내려가는 복도 계단 벽에 작품들이 걸렸다. 호수돈여자고등학교 내에 있는 홀스톤 갤러리로 가는 길. 1층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홀스톤 갤러리는 2010년에 개관했다. 원래 1층에 있던 미술실을 없애며 반지하 공간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호수돈여자고등학교 미술 교사이자 홀스톤 갤러리의 디렉터인 김주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작 활동보다는 미술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고 싶어 다시 미술실을 만들기보다 갤러리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잘 그리고 잘 만들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미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감상 교육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죠.”

기획 전시를 해야 학생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홀스톤 갤러리를 기획 갤러리로 만들었다. 개관기념전 ‘空手來空手去’는 김주태 선생님과 류병학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했지만, 이후에는 미술부 학생들도 기획에 참여했다. 최근에 한 전시 ‘남을 위해 살자! 2’는 학생들이 직접 대전 시내 미술대학에 찾아가 작가를 선정해 섭외했고 도록에는 추천 이유를 담았다.

▲ 점심시간, 홀스톤 갤러리
작년에 진행한 ‘이것이 大田미술이다 2’에서도 미술부 학생들이 직접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기획했고, 직접 작가 작업실로 찾아가 인터뷰한 것을 도록에 실었다. 1, 2학년 미술부 학생들이 겨울 방학 동안 준비해 봄에 선보이는 전시 ‘각색’은 호수돈여자고등학교 미술부의 또 다른 전통이 되었다.

“갤러리를 맡아 전시 기획하고 작품을 거는 게 고등학생 신분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미술 하는 학생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접해서 좋아요.”라고 미술부 홍정민 학생은 말한다. 이하영 학생은 “홀스톤 갤러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호수돈여고에 왔어요.”라며 홀스톤 갤러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 김주태 선생님과 홀스톤 갤러리에 놀러온 학생들
앉아서, 누워서 자유롭게
홀스톤 갤러리는 작품만 감상하는 곳이 아니다. 전시회를 여는 날이면 오프닝 음악회를 하며, 유명 인사에게 영화를 추천받아 영화제를 열기도 한다. 또 다양한 분야의 연사들을 초청해 강연도 진행한다. 또 이곳에서 미술 수업도 한다.

김주태 선생님은 “20년 이상 교실에서 미술 수업을 해온 것보다 홀스톤 갤러리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인문계 고등학교 안에서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라는 것이 학생들이 홀스톤 갤러리를 찾는 이유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친구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쉬기도 한다. 김주태 선생님은, 학생들이 편히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홀스톤 갤러리 바닥을 나무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막았고 음식 먹는 것도 막았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갤러리가 조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학생들이 편하게 있도록 둬요. 갤러리에서 왜 서 있어요? 힘든데 앉아 있으면 되죠.”

홀스톤 갤러리는 호수돈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전시를 기획하는 공간, 쉬는 공간,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지만, 외부 갤러리를 학교 안에서 활용하는 것일 뿐이다. 홀스톤 갤러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한 번 철푸더기 앉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져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공간, 홀스톤 갤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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