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된 시를 노래하다
노래가 된 시를 노래하다
  • 글 성수진 사진 정종대
  • 승인 2014.02.1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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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노래 부르는 정봉현 씨

“어디서 들어보니까요. 지구 상에서 인간이란 종족을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구가 2억이래요. 그런데 현재 인구가 60억이 넘잖아요. 말하자면 60억 중 58억은 지구 생태계에 폭력이라는 거죠. 더 검박하고 무소유로 사는 삶에 관한 집단 자각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꿈을 꿉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노래나 좀 해 보려고 하는데 이것도 부끄럽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 정봉현 씨
정봉현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부끄러움이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그는 꽤나 찝찝하게 인터뷰를 승낙했다. ‘찝찝함’의 이유는 부끄러움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끄럽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월간 토마토에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 역시 분명했다.

일주일을 살게 한 힘, 노래하다
사람들은 정봉현 씨를 농민가수라고 부른다. 재작년까지 농부였던 그(그는 ‘농부’가 정말 귀한 말이라며 농부라고 칭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노래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부르는 말이다. 정봉현 씨는 농민가수란 단어가 부담스럽다며 자신은 그저 노래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통기타를 연주하며 정봉현 씨가 부르는 것은 시 노래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시에 멜로디를 붙이고 코드를 붙여 노래한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노래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좀 안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생기죠. 사업하다가 힘든 일이 있었어요. 꼭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을 때예요. 시골 개척교회 목사인 후배가 주보를 손으로 써서 주보 편지라고 보냈어요. 주보 맨 앞장에 자필로 시를 쓰고 감상을 달아서 우편으로 보내왔죠. 일주일에 시 한 편씩 읽으면서 위로받고 그래도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시가 정봉현 씨의 일주일을 버티게 했다. 일주일 동안 같은 시를 계속 읽다 보니, 언젠가부터 시에서 노래가 느껴졌다. 정봉현 씨는 그 노래, 시를 흥얼거리며 조금씩 갇혀 있던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동굴에서 거의 빠져나왔을 때는 시를 노래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 정봉현 씨


세상에 나와 부르는 노래
혼자 약을 먹는 기분으로 시 노래를 불렀다.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무언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해 동안을 혼자 노래하다가 어느 날 찾아온 친구들에게 시 노래를 들려줬다.

“대학시절에는 대중들의 문화적인 에너지를 끌어 올리려고 노래하는 활동을 했죠. 대중 보급용 테이프도 만들고요. 80년대 초 일인데 그걸 기억하는 친구들이 놀러와 노래를 불러달라기에 나를 살려준 노래들을 불렀죠.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정봉현 씨의 시 노래를 들은 친구들은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라며 정봉현 씨를 부추겨 ‘무대’에 세웠다. 한밭레츠나 민들레의료생협 등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정봉현 씨는 무대에서 시 노래를 불렀다. 작은 무대를 시작으로 지금은 여러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대학 시절 정봉현과 지금의 정봉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다는 게 같지만, 노래를 부르는 자세는 바뀌었다. 대학 시절 불렀던 노래가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함께 이루어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는 ‘미학적인 구호’였다면 지금 부르는 노래는 개인의 정신과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노래다.

“나이 들어서 생각해 보니까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에요. 당시에도 사랑을 노래했지만, 그 사랑은 함께 나눌 의지에 대한 열정이었고요. 정말 순수한 사랑은 배제됐었죠. 너무 낭만적이고 소시민적이라고 배제했던 거예요. 어느 것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모두 이어져 있고 순환되어야 하고 그 동력은 나로부터 나와야 하죠. 지금 제가 부르는 노래는 그래요.”

좋은 시를 노래하는 일
처음 멜로디를 붙여 부른 시는 안도현 시인의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다. 다른 사람이나 ‘밖’에 돌렸던 원망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한 시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시였다.

“좋은 시를 노래해요. 저한테 위로가 됐던, 기도가 됐던, 그래서 삶을 좀 밝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갖게 하는 시들을 노래해요. 수도 없이 많이 읽다 보면 시인이 시에 심어 놓은 운율을 느끼게 돼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멜로디가 떠올라요. 시인이랑 소통하는 거죠.”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하는 것은 정봉현 씨가 시를 감상하는 법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 시에도 후렴이 있다고 말한다.

“한 시를 백 번 읽어 보세요. 반복해서 읽으면 후렴이 보여요. 이 양반이 여기서 소리를 치고 싶었겠구나 하는 게 보여요. 꼭 시로 노래를 부르지 않더라도 시를 맛있게 읽는 방법이 후렴구를 찾는 거예요.”

말하자면, 정봉현 씨는 시를 읽고 받은 느낌, 생각을 노래한다.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준 시에 숨결을 불어넣어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정봉현 씨는 사람들 앞에서 시 노래를 부른 후에 꼭 ‘시 좋죠?’ 하고 묻는다. 시가 좋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것으로 뿌듯하다.

가끔 정봉현 씨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결체인 시를 노래로 만드는 것이 괜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분히 음미하기만 해도 충분한 것에 굳이 곡을 붙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시 노래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누군가 공연을 해달라고 하면 망설이다가도 하려고 노력한다.

정봉현 씨가 부르는 시 노래는 소박하고 정감 있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무언가 질문을 던진다.
“저는 음악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아는 코드로 노래 만들어 부르는 것뿐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시로 노래하니까 봐줘야겠다.’라는 정도겠지요. 하지만 저는 역으로, 음악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다정하게 얘기하듯 부르지 않는 노래는 별로예요. 순직할 것처럼 부르는 노래에 사람들이 감동할 순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들에게 대화 건네고 되묻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답게 사는 사람을 위한 노래
정봉현 씨의 시 노래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은 집에서도 정봉현 씨의 노래를 듣고자, 더 많은 이와 노래를 나누고자 종잣돈을 만들었다. 2년 전쯤, 정봉현 씨 시 노래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은 돈으로 정봉현 씨는 음반을 냈다. 공연 때 팔기도 하고, 알음알음 정봉현 씨의 음악을 찾는 사람에게도 판매했다. 출자자들이 음반을 나누어 가져서 단체나 행사를 통해 팔기도 했다.

음반에는 열두 곡을 수록했다. 열한 곡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고 마지막 곡 ‘생명의 물’은 정봉현 씨가 직접 가사를 쓴 것이다. 물은 세상 모든 고달프고 보잘것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내용이다. 노래로 여러 사람에게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정봉현 씨의 생각이 잘 드러난 곡이다.

“저는 사람의 꿈이 사람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나 싶어요. 사람의 꿈은 사람밖에 몰라요. 저도 사람에 대한, 특히 사랑에 대한 시를 많이 읽고 위안을 찾고자 해요. 혼자 위안을 찾았던 건데, 사람들이 좀 더 가벼워지고 소박해졌으면 좋겠어서 그런 마음으로 시 노래를 해요. 이런 마음을 말로 할 수는 없잖아요.”

정봉현 씨가 시 노래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나눔’이다. 어려웠을 때 자신에게 다가온 한 편의 시처럼, 자신의 시 노래가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제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어요. ‘생명의 물’ 이후에도 제가 직접 쓴 가사가 몇 있어요. 사람들이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과 서로 보듬고 나누고 살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그렇게 살아야 그나마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결국, 이것도 구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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