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대동작은집
공간 대동작은집
  • 글 사진 이수연
  • 승인 2014.06.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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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허락하는 그 언덕에 대동작은집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정도 늦어졌다. 평소 같으면 흘러가는 시간에 쩔쩔매며 끌려갔을 텐데, 그냥 천천히 걸었다. 가파른 언덕은 한 걸음씩 꾹꾹 누르며 걷게 했다. ‘조금 늦으면 어때.’ 평소라면 생기지 않았을 배짱도 생겼다. 그 길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굳이 시간에 메이지 말라고 격려했다. 느려도 괜찮다고 토닥였다. 기꺼이 산책을 허락한다. 대동작은집으로 가는 길이다. 대전시 동구 대동, 그곳에 대동작은집이 문을 열었다.
“대동역에서 7번 출구로 직진. 진미치킨박사와 벽지집 사이 골목으로 들어와 직진/ 신 대동복지관에서 오른쪽으로. 구 대동복지관 쪽으로 오다 보면 진달래아파트 옆, 연애바위이야기 벽화 앞입니다. / 걸어오시는 언덕길의 경사가 조금 힘들 수 있습니다. 수동자동차도….” - 산호여인숙 블로그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길을 잃었다. 간신히 진달래아파트까지도 찾았는데, 헤매다 지나칠 뻔했다. 풍성하게 자란 나뭇잎 사이에 대동작은집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작고 아담한 집이었다.

얼굴을 내민 곳으로 들어가니 2층이다. 대동작은집은 1, 2층과 옥상이 있다. 보통 집과는 좀 다르다. 손님을 맞이하는 문이 2층에 있다. 1층으로 가려면 집 안에 있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거나 집 둘레를 빙 돌아가야 한다. ‘판자촌이었던 동네였기에 원래 1층만 있던 곳에 2층을 올린 것 같다.’라는 추정이다. 그래서 계단이 90도로 곧게 서 있다. 사람만 지나다닐 때에도 조심스레 오르내려야 할 것 같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 흔적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서은덕, 송부영 씨다. 산호여인숙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근한 사람들이다.

“3년쯤 산호여인숙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 다른 의미의 문화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죠. 저희 표현으로 ‘자유산호분방한 시선’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던 거죠. 공간을 알아보려고 대동에 다닌 것은 아니었고, 산책하다 이 집을 발견했어요. 여러 조건이 좋았고, 지난 2월에 계약했어요. 산호여인숙의 연장이 아니라 송부영과 서은덕의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똑똑도서관’, ‘텍스트가 머무는 공간’이 지금 대동작은집이 결정한 것들이다. 1층은 텍스트로 작업하는 작가를 레지던시 형태로 머물게 할 것이다. 지금은 ‘바닥’이라는 입주 작가가 머문다. 1층 거주 작가는 두 명 정도로 한다. 문자로 작업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머물 수 있다. 시, 소설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도 괜찮다. 이들의 작업은 텍스트로 기록할 것이며, 작가가 원한다면, 전시하기도 한다.

2층은 똑똑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는 100인의 책장이 있다. 100인의 책장에는 한 사람에게 의미 있었던 책 한 권씩을 받아 보관한다. ‘100인’이라고 한정 짓지는 않았다. 다수의 의미를 포함하는 100인이다. 이곳에 책을 건네는 사람들은 ‘이 책을 건네는 이유, 이 책을 보았던 느낌, 이 책을 사랑했던 기억’을 하나씩 책에 적었다. 적고 난 후엔 사진을 찍었다. 대동작은집 똑똑도서관 벽엔 그 사진을 인화해 붙였다.

“다수의 편안함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기억되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 산호여인숙 블로그

“책장 앞에 서서 책을 고르다가 문득 ‘내가 있어 보이고 싶은 책’을 고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지 말자 다짐하고 집어 든 책이에요. 외로울 때 많이 읽었어요. 좋아요. 그냥 좋았어요.”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건네며 앞 장에 이 문구를 썼다.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심했다기보다 그냥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을 생각했다가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로 바꿨는데, 서점에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길 위의 철학자>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2014년 내가 길 위의 음악가가 되기로 선언했기 때문일지도….(중략)”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에 쓰인 문구다.

“‘사랑한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책 중의 말을 옮겨봅니다. 읽고 나서 가장 많이 선물했던 책입니다. 100인의 책장에서 많은 이에게 영혼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나누어주길….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하세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쓰인 문구다. 책장 앞에서 책보다 먼저 사람을 만났다. 사람이 하나씩 책장에 앉았다. 동화책, 만화책, 소설책, 철학책, 종류도 다양했다.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책을 통해서 만나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책도 그냥 책을 기증받기보다는 책을 보고, 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책을 받으면서 글을 써주십사하고 부탁했어요. 쭈뼛쭈뼛하다가도 진지하게 한자씩 쓰시더라고요. 산호여인숙도 그랬고, 대동작은집도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만들어졌어요.”

낮에도 밤에도 ‘창문’이 그림을 그리는 곳

언덕에 빼꼼 얼굴을 내밀고 섰다. 언덕 아래는 멀리 보이는 대전역 쌍둥이 빌딩부터 파랗고 하얗고 빨간 지붕이 있는 집이 죽 있다. 조용하다. 밖에서 잠깐씩 누군가를 부르는 꼬마의 소리가 들리고, 전화통화를 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작은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는다. 창문으로는 바람이 성큼성큼 스스럼없이 들어온다. 그 창이 또 시간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밤이 되자 저 멀리서부터 불을 켜 놓고, 빛을 뿜는 도시가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아직 확실하게 정한 것은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곳만의 특성이 더 도드라지겠죠. 저희가 정해놓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이곳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그런 느낌은 있어요. 이곳에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 작게 보이잖아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세상은 참 빨리 돌아가고, 빠르게 움직이는데, 여긴 조용해요. 올라오는 길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돌아서 와야 하고, 그러다 보니 더 겸손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소파에 누워 책을 보다가 어둑어둑해졌을 때 길을 나섰다. 동네가 적당히 어둡고, 고요했다. 내려가는 길은 느린 걸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빠르게 발을 움직여 내리막길을 걷다가 잠깐 멈췄다. 조금 불편해도 다시 올라가 보고 싶은 그 언덕에 대동작은집이 있다.

대동작은집
대전 동구 대동 1-570번지
http://blog.naver.com/sanho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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