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모 유원대학교 교양유합학부 교수, "박문과 약례의 균형"
서용모 유원대학교 교양유합학부 교수, "박문과 약례의 균형"
  • 최형순 기자
  • 승인 2017.06.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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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폭넓게 (학)문을 배우고 그 배움을 예(禮)로써 단속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덕인지 아니면 탓인지 많은 사람들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으로는 학생들, 대학생들과 주로 시간을 같이 하고 있지만, 때로는 나보다 연장자 혹은 배움에서의 선생님도 계시다.

서용모 유원대학교 교수

나도 시간이 되면 작은 배움이라도 시간을 내어 배워보려고 노력을 한다. 현재 일로 공부하는 전공의 여부를 떠나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것에 대해 시간을 내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어른신들 혹은 주변 (학자)선배들로 하여금 지적을 받기도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참 배울 것이 많다. 아니 죽을 때까지 배워야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오히려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배움을 지닌 사람들은 넓은 세상을 익히는 것보다 소위 한 우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한눈이라도 팔게 되면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을 보면 "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군자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가 나온다. 풀어보면, 군자는 폭넓게 (학)문을 배우고 그 배움을 예(禮)로써 단속 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학어문의 박문은 주희(朱熹)에 의하면 만물의 이치를 모두 알고자 하는 것을 뜻하며(道問學), 약지이례의 약례는 마음의 이치를 존양하며 성찰하는 것으로 존덕성(尊德性)이라 하였다. 이처럼 주희는 이러한 내용으로 詩書와 六禮의 이해뿐만 아니라,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여 행위의 당부(當否)를 분별하는 것들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박문은 사물의 이치를 알아가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뿐만 아니라 약례는 바른 마음의 성(誠), 바름(正)이요, 중요함(宗)으로 그 삶의 실천 도리였다. 공자는 박문약례로 교육의 지침으로 삼은 이유를 박문과 약례를 일관하여만 도(道)에 도달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박문의 방법으로는 중용에 학문의도(道)를 언급하고 있다. 널리 배우고(博學之), 자세히 묻고(審問之), 신중하게 생각하며(愼思之), 명백하게 밝히고(明辨之), 독실하게 행하라(篤行之)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배우는 방법론의 도 즉, 실천의지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紙面의 활자뿐만 아니라 文과 文사이의 숨어있는 예(禮)를 인지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우리가 따라야할 예에 대한 실천의지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한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했다.

이것이 예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본 것이다. 상아탑에서도 배움의 최고(最高峰)에 있는 그들도 예를 잊는 경우도 많이 있는 듯하다. 그 문하생들이 있음에도 잠시 사리사욕으로 그 예를 벗어나서 심지어는 그들까지 그 악예(惡禮)의 동반자로 만들기까지 한다.

우리주변으로 돌아보면 우리의 삶을 담보로 그 배움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기업인들은 대놓고 악예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그런 실천에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박문과 약례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혼란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논어 헌문(憲問)에 보면 "이익(利)을 보면 의리(義)에 부합 되지를 생각하라(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익을 바라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야 할 것이다. 즉, 이익을 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정당성을 생각해 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學生)에게나, 정치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아니 우리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가져야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사람은 그 배움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부하는 그런일(曲學阿世)은 없는지에 대하여 나 자신부터 반성해야할 일이다. 정치인들의 일편단심 민생의 안생생(安生生)의 고민도 다시 돌아봐야할 것이다.

기업들의 이익이 부당한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살펴봐야할 것이다. 이렇듯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爲人之學)는 아닌지, 그 배움에 예를 더하여 수행하고 있는지 자문해야겠다.

작금, 악행은 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 죄인 탓도 있다. 그래서 배움은 단순히 사물을 익히고 문월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철학을 같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禮를 담은 철학을 말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들의 올바른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요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창업가들이나 현재의 기업인등에게 박문약례의 철학이 필요하다.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을 험난한 세상으로 몰아가는 대학의 시스템도 조금은 돌아 봐야할 것이다. 그것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단순히 창업이나 창직의 부푼 꿈을 위해 무소처럼 달리기만 하다보면 사상누각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 나가는 마음에 禮를 담고 나가면 지금 보다 더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 예는 지금의 기업가 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이익 창출의 기회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의 기회로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음이야 양이야 도와주는 다양한 기관들은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시스템을 통해 그들에게 박문이 아니라 예를 더한 철학적 시스템을 갖추어야할 것이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멘토링도 될 수 있고 지속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 물론 세상의 중심에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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