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예보 발령
“닭에 옮길라”엽총으로 종일 철새 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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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4일 오전 충남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2발의 총성이 울렸다. 비상하던 철새 떼가 황급히 방향을 바꾸더니 인근 저수지 쪽으로 날아갔다. 이곳은 국내 대표적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과 인접한 마을이다. 4만2,000마리의 닭을 기르는 박태원(56)씨가 자신의 양계농장으로 접근하는 철새를 쫓기 위해 엽총으로 공포를 쏜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소독
“철새가 날아와 자식 같은 닭에게 조류독감을 전염시키면 모든 게 끝장이잖아유. 매일 3~4차례 축사를 소독하고 외부인의 농장 출입을 막고 있지만 철새, 까치, 산비둘기 등이 축사와 바로 옆 논까지 날아와 걱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씨는 홍성군에서 유일하게 유해 조수퇴치 목적으로 엽총 사용허가를 받았다.
매일 아침 집에서 2.5㎞떨어진 파출소로 달려가 영치시킨 엽총을 꺼내 철새를 쫓고 오후엔 다시 파출소에 맡긴다. 서해안 지역의 농민들은 지금 온통 조류독감 공포에 휩싸여 있다.
대책없이 떠들어대면 농가만 죽어
조류독감 여파로 서해안 각지에서 곧 시작되는 각종 철새 축제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12월초 제2회 세계철새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는 전북 군산시는 홍보를 자제하고 탐조투어를 취소하는 대신 방역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21일부터 11월말까지 천수만A지구에 날아오는 50여만마리의 철새를 탐조하는 세계철새기행전을 여는 충남 서산시도 올해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좌불안석이다.
2003년 12월 조류독감이 발생해 닭 30만 마리를 땅속에 묻고 농장과 마을 전체가 폐쇄, 집단 이주 위기까지 몰리는 악몽을 겪었던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는 요즘 다시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11농가가 집단으로 닭을 키우는 이 마을은 조류독감 예보가 발령되면서 그야말로 초긴장상태였다. 마을 초입에는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섰고 오가는 사람도 없이 마치 적막강산이다. 농가들은 2003년 당시 인근 하천의 텃새가 축사를 출입해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 뒤 농장 전체에 새들이 접근 못하도록 그물망을 쳐놓고 있다.
주민 배종옥(43)씨의 요즘 하루는 방역작업으로 시작해 방역작업으로 끝난다. “농장에서 출하하는 달걀 시세가 추석 전 1개 120원 수준에서 어느새 68원으로 폭락했습니다.”
배씨는 또한 “2년 전 닭을 살처분하기 전에 1억원 안팎이던 빚이 3억2,000만원으로 늘었다”며 “마을농장이 재기해 이제 겨우 돈을 만질 만하니까 다시 조류독감 예보 발령이나 파산 직전에 몰렸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