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무 화백을 두 번 죽이지 말라

<시사포커스> 문화의 불모지로 남을 것인가

2005-11-10     이덕희 기자

   
▲ 심향선생
동양화 6대가로 손꼽히는 심향 박승무 화백의 넋을 기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자와 자손 없이 쓸쓸한 생을 마감한 박승무 화백의 묘소가 무방비로 훼손돼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대전시에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 추진위가 결성되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향후 사업을 전망하고, ‘심향 박승무’는 과연 어떤 인물인지, 또 그를 기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명해 본다.

예술가의 한 길 걸었으나… 쓸쓸한 후생

작품의 가치도 잘 모른 채 오직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심향 박승무 화백. 예술가의 한 길 만을 올곧게 달려왔던 위인이지만, 후생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같은 시기 활동했던 이동훈 선생은 제자가 많았기 때문에 현재 ‘이동훈미술상’을 제정해 추모되고 있지만, 심향 박승무 화백의 자취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대전시의회 강홍자 의원은 “그분은 자신 작품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고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회상한다. “그림만 그릴 줄 알았지 작품이 얼마에 팔리는지, 본인의 작품이 얼만큼 가치를 인정받는지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하나 있는 딸은 소식이 끊겼고 그마나 묘소를 돌봐오던 처조카는 그 땅을 팔고 잠적한 상태. 훼손된 묘소는 현재 집주인에게 애물단지로 취급되고 있다.

중구 목달동에 있는 심향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 보니 그의 후생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대전동물원과 농수산물센터를 지나 시골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만한 길가에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 치고는 꽤 규모가 있었으나 아래를 받치고 있던 돌들은 많이 훼손돼 있다. 땅주인의 사는 한 농가를 지나 산비탈로 올라가니 양지바른 곳에 심향선생이 누워 있다. 눈을 감고서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을 듯 싶다. 그는 미리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쇠한 상태였지만, 비석을 1년 전에 세우는 등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 놓았던 것.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역미술계 ‘추모’ 움직임

심향선생 추모사업 추진위원회 박홍준 회장은 “심향 박승무 화백이 대전이 아닌 광주나 대구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면 이와 같은 상황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시 소유의 공원에 선생의 넋을 기리고 작품세계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 화백의 발자취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전미술협회 박홍준 회장과 선화기독교미술관장 정명희 화백을 공동위원장으로 한 ‘심향 박승무 화백 추모사업 추진위원단’은 대전시의회 강홍자 의원 등과 협력해 추모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대전미협에서는 전 회장 때부터 논의된 내용이었지만 실질적 움직임에 착수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1월 26일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사업진행에 활기를 띠고 있다. 묘지이전, 추모전 및 미술상 제정 등의 굵직한 사업들도 계획돼 있다.

“세미나에서 가치 검증돼야” 시는 행정적 지원할 뿐

그러나 이번 사업에 대해 대전시 문화체육국 정하연 국장은 “아직 사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오는 11월 26일 진행되는 세미나를 통해 심향 박승무 화백에 대한 가치가 명확해지면 그 이후 검토 가능한 일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역문화의 정기를 올바로 세우겠다는 대전시의 적극적 결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냉소적이다. 추모사업의 첫 단계인 ‘세미나에 대한 지원’은 하기로 했지만 이후의 발전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반응. 추모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누차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시의 주체적인 움직임이 동반돼지 않는다면 현재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 밖에 없다. 해당 부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오직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다 한 생애를 마감한 심향 박승무 선생의 넋을 위로하고, 지역문화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대전시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중국서 화법공부… 대전서 정착 말년 보내

1930~4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동양화 화가 심향 박승무 화백은 1893년 서울 효자동에서 태어났다. 소림 조석진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던 김창환의 영향으로 묵화를 시작했으며, 1914년 안중식의 지도로 서화미술회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이어 1917년에는 중국의 화법공부를 위해 상해로 건너가기도 했다. 

동양화 6대화가전, 대한민국 미술전 등에 초대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후반기 선전출품을 거부하며 재야작가로 남는다. 더욱이 해방 이후는 일제 미술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해 왔으며, 6.25 동란 이후부터는 줄곧 대전에서 은거생활을 해왔다. 강직한 성품에 찾아온 제자도 돌려보내고, 대를 이을 자식도 두지 않았던 박승무 화백. 현재 ‘금강화가'로 불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산 정명희 선생도 심향 선생의 제자가 되고자 했었다. “제자가 되려고 찾아갔었는데 받아주지 않았다. 혼자 그려도 될텐데 무얼하려 스승을 찾느냐”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대전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박승무 화백은 대전 중구 대흥3동에서 거처하다가 1980년 8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협조 / 박홍준 한국미술협회 대전광역시지회 회장, 강홍자 대전시의회 의원,
정명희 선화기독교미술관장·한남대 겸임교수, 황효순 미술평론갇한남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이지호 대전광역시립미술관 관장

심향의 작품 세계

심향 박승무의 작품세계는 일생동안 세 번 변모한다. 초기에는 조석진 안중식에게서 사사하던 시기라 이렇다 할 개성이 없었다. 1927년부터 30년경까지의 시기에는 수직적인 구도와 전통적인 삼원법에 의한 원근법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1930년경 이후부터는 수평적인 구도와 자유분방한 화법으로 현실감있는 우리 생활의 주변을 화폭에 담았다. 심향 박승무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미점을 구사하며 집은 원형의 창을 뚫어 놓은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동양화 6대가는 누구?

6대가가 탄생하게 된 것은 1971년 서울 태평로 신문회관의 화랑에서 열린 ‘동양화 여섯분 전람회’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1940년 조선미술관 창립 10주년 기념전인 ‘십대산수풍경화전’에 참여했던 작가들 중 1971년 생존해있던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변관식, 이상범, 노수현 6명이다. 박승무 외 5인에 대한 소개.
 
▲의제 허백련(1891~1977) : 전통적 남종화에 기반을 두고 한국적인 수묵화의 맥락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작가. 한국적 남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이당 김은호(1892~1979) : 20세에 어용 화가가 된 대표적인 채색 세필화가로서 초상, 인물, 화조, 신선도에 능했다. 후소회라는 모임을 통해 월전, 운보 등 후학을 배출했다.

▲청전 이상범(1897~1972) : 한국전통 근대화의 대표적 작가. 그의 산수풍경 그림은 한국의 자연을 가장 향토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산 노수현(1889~1978) : 보수적 방식을 벗어나 회화공간의 자율성이라는 근대성을 성취한 작가다. 점을 찍듯이 선을 이어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한국미술협회 대전지부 박홍준 회장
추모전 비롯 심향 미술상 제정해야

심향 박승무 화백의 작품 특징은
박승무 선생에게 왜 주로 ‘설경’을 그리냐고 물으면 “물감이 없어서 설경을 그렸지 괜히 색을 안썼겠느냐”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설경을 많이 그렸다. 먹으로 다루는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어냈을 때 모든 색이 나타나야 한다는 점. 같은 백색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원근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해냈다.

그의 성품에 대해
1970년대 초반에는 동네 다방에서 작품전시를 하기도 했다. 대전시내의 문화원 한 곳 이외에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 박승무 화백은 성품이 강직하면서 잔정이 많이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작은 그림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인이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국전 관계자들과는 거리감을 두고 지냈다.

추모사업 진행계획은
먼저 오는 11월 26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박승무 화백의 작품세계와 근현대사에 남긴 발자취에 대해 논의할 예정. 2006년 11월경에는 심향 박승무 화백의 대표작 100여점 정도를 모아 추모전을 계획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심향 미술상’을 제정해 화백의 정신에 부합하는 창의적인 작가를 선정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이지호 관장
작품세계에 대한 충분한 연구 필요

심향 박승무 화백의 추모사업에 대해
박승무 화백과 같이 절개있고 깊이있는 예술세계를 가진 작가를 기리는 일은 지역문화 발전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세미나 장소를 제공키로 한 것도 뜻에 동의하기 때문. 그러나 사업이 실시되기에 앞서 먼저 충분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예를 들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추모’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인 사업만을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심향 박승무 화백에 대한 결례다. 먼저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모아 진위를 판정하고 감정을 통해 연대별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가 진행돼야 한다.

지역의 미술인으로서 한마디
작품활동과 삶이 일치했던 심향 박승무 화백은 지역문화의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이다. 대전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인물로 뜻을 정립하는 작업이 계속돼야 할 것이며, 이는 대전의 이미지 제고에도 한 몫을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정 변관식(1899~1976) : 6대 작가 중 가장 개성있는 필치로 새로운 한국산수화의 경지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금강산을 많이 그렸고 중묵의 독창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