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품종 소량생산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남성의 복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넥타이는 같은 원단을 사용하여 300개 이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여성용 스카프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품종소량생산으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마인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다품종소량생산시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여기에서 ‘다품종소량생산’은 곧 ‘다양성의 존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구나 눈만 뜨면 복잡하고 서로 다른 사회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사회집단에는 어떤 식으로든 다양성이 존재하며, 개개인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구성원 각자에게 처해있는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이들 다양성의 수용과 그 역기능 방지라는 두 가지 숙제를 어떻게 동시에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는 각자의 개성 존중은 물론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역기능으로 작용하여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사회를 차분하게 성찰해 보면, 자기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지기를 고집하면서도 타인의 개별적 환경이나 의견은 무시하여 주위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더 나아가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사회현상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고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생산원가의 균형점을 찾아 넥타이를 만드는 지혜와 같이, 다양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혜는 바로 ‘다양성의 존중’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우려하기에 앞서서 그것들을 적절하고 조화로우며 균형을 이루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소품종다량생산으로 누렸던 생산원가의 절감이라는 가치가 다품종소량생산으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치보다 더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생산원가의 절감이라는 측면보다는 고객의 욕구충족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어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성의 존중으로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비용의 절감이라는 가치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루는 사회질서의 가치보다 결코 더 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과 다른 부분에 대해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서로 민주적 절차와 질서를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 그러한 요건들이 충족될 때에 비로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것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공동체사회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양성 존중이라는 것으로 인해, 분자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서 있는 상태로부터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해 간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작용하여, 사회질서가 파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존중,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차분히 둘러보면서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공존하고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다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결코 손가락으로 뚫은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행동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