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는 살아있다”

유성장

2005-09-02     편집국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장날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사주셨던 허름한 중국집의 우동맛은 아직도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킬 때마다 생각이 난다. 우동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손꼽아 기다렸던 장날. 그런 구수한 구수한 맛을 기대하며 유성장을 찾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유성장은 무척 혼잡해 보였다. 다들 백화점이나 할인점만 찾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장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유성장에 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이곳은 공주와 신탄진방면, 시내(구도심)방면의 도로가 만나는 곳이라 교통량이 많은데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차를 가지고 오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에 버스편은 각 방면과 잘 연결되어 있고, 바로 근처에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두 곳이나 있어서 외지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하상주차장이나 공한지 무료 주차장이 있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유성장 스케치

유성장은 위에서 언급한 세 방면으로 연결된 도로가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삼각지의 중심에 펼쳐져 있고, 대여섯 개의 노점상들로 가득찬 골목들에 의해 잘게 나뉘어 진다. 혼잡하지만, 왠지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이 싫지 않고 정겹게 느껴진다.

유성장에서 취급되는 물건들은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백화점이 그 이름을 무색해 할 것 같다. 살아 있는 닭, 오리, 개, 토끼, 잉어, 가물치, 각종 묘목, 씨앗 등.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운 무좀약(왜냐하면 그 무좀약과 말린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를 함께 펼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과 시뻘겋게 가죽이 벗겨진 토끼 고기와 개고기가, 살아 있는 예쁜 토끼, 강아지와 함께 팔리고 있는 진풍경은 장터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 곳에는 먹거리도 풍부하다. 영화에나 나옴직한 노천 식당들, 순대집, 호박엿, 그리고 각종 떡들…. 장터 구경에 허기진 행인들의 배를 채우기엔 그만이다.
층별로 물건들이 특성화되어 있어 가야할 층을 미리 정해 놓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 의해 그 층으로 곧바로 배달되어지는 다른 상업 공간과는 달리, 다양한 물건들이 함께 섞여 있어 언제 어떤 물건과 마주칠지 모르는 장터는 자연스러운 이벤트와 버라이어티쇼가 연출되는 무대이다.

심장이 놀랄만한 갑작스런 뻥튀기 기계의 음향 효과와 예쁘게 분장을 한 아주머니가 시퍼런 칼로 개 한 마리를 여러 조각으로 발라놓는 장면이 연출되는 그런 무대…. 노약자나 임산부는 출입을 제한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무질서해 보이는 장터지만, 자연스레 형성된 어느 정도의 질서는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을 파는 곳은 아무래도 냄새나 먼지가 있기 마련이어서인지 시장 내에서 비교적 외진 곳에 따로 몰려 있고, 고추를 포대자루채로 파는 아주머니들은 교통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한 시장 입구 큰길가에 몰려 있다.

한편 장터 내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힘없는 할머니들은 손수 마련하신 듯한 나물이나 채소 몇 가지를 장터 외곽의 인도에다 늘어놓고 손주에게 줄 용돈을 마련한다.

유성의 명(明)·암(暗)

한참을 정신없이 장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나는 문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서커스라도 열렸음직한 공터가 있고 그 옆으로 정말 낡아 보이는 박공지붕 모양을 한 기다란 두세 채의 건물이 좁은 간격을 두고 줄지어 서 있다.

50~60년대의 유성 장터 모습이 이랬을까? 헌데 이곳은 이상하게도 바로 옆길이나 그 건너의 장터와는 다르게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고 점포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이다.

한 할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이곳이 원래 유성장터인데, 전부가 논밭이었던 장터 뒤편이 새롭게 구획정리가 되면서부터 상권이 그곳에 형성되었고, 임대료를 구청에 내고 장사하는 이곳은 그 임대료가 열 배 이상이나 오르자 상인들이 모두 나가거나 신상권쪽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유성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가 아이러니 하게도 유성장을 찾는 사람들이 발길조차 두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유성장은 1916년 10월 15일에 개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장대동 119번지인 이곳에서 가설 점포인 ‘장옥’의 형태로 성시를 이루었고, 그 뒤 6.25동란 때 모두 불타버리고 미국의 원조를 받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수 파는 할머니와 옷 파는 의사?

한참을 돌아다니다 모퉁이에서 할머니 두 분이 국수와 팥죽을 파는 모습이 반갑게 느껴져 국수 한 그릇을 청했다. 국수를 먹는 동안에, 41년째 이곳에서 국수를 팔고 있다는 할머니(77)한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유성장은 원래 5일, 10일장이었어. 그런데 장날마다 비가 와서 4일, 9일장으로 바꾸었는데 그 이후로는 비가 오지 않더라구. 4일, 9일장으로 바뀌면서 같은 날에 장이 서던 공암(공주)장은 없어졌지….”

참고문헌에 의하면 유성 인근에는 신탄진장이 1일과 6일(지금은 3일과 8일이다), 대평장이 2일과 7일, 옥천장이 5일과 10일이고, 진잠에도 장이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조만간에 이 낡은 건물들이 모두 헐리고 새로 지어진다고 했다. 지하가 파여지고 1층에는 가게, 2층에는 살림집이 들어서는, 아마 전문용어(?)로는 ‘주상복합’이라고 해야 할 구조인 것 같다.

어떻게 설계되고 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장터의 형식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지는 의심스럽다. 신작로 저편의 모습과 같이 변해 버려서 다시는 유성장 고유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국수 그릇은  비워진지 오래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진짜 국수 맛이다. 국물과 국수 양념장 외에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41년 동안 국수를 말아온 연륜의 맛인가? 곁들여지는 총각김치도 일품이다. 뿌듯한 포만감으로 그 앞 공터에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정말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옷가지들을 팔고 있는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옷을 사러 온 아저씨한테 일할 때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며 옷을 하나 권했다. 그 옆에 있던 부인이 하는 말이 “몸이 저래가지고 어떻게 일을 해?”라고 하며 그냥 가버리려고 하자 주인아저씨는 곧바로 그 아저씨의 맥을 짚어보고 배를 눌러 보더니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간이 안 좋아! 딱딱해! 설탕하고 닭고기는 절대로 먹지 말어! 인진쑥 같은 것이 좋지! 우리 형님이 설탕 가루에 밥 비벼 먹고 하더니 일찍 죽었어!”

이 이야기를 듣고 옷 사러 온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옷을 사기로 한 모양이다. 옷을 건네주면서 아저씨 하는 말이 “원래 4만원짜린데 2만원만 주슈” 옷값하고 진단비가 합쳐진 가격이니 그리 비싼 건 아닌가? 옷도 사고 진찰도 함께 받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맛보고 싶은 분은 유성장으로 오시라.

탐험을 마치고 장터를 빠져 나오는데, 장터 외곽에 진을 치고 있는 할머니들이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서글퍼진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장터. 그 장터가 아직 활기차게 살아있는 모습은 무척 다행스러웠지만, 머리 속에는 사라져 가는 옛 유성장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그 모습, 그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장터의 독특한 구성 형식(좁은 골목들을 지나면 행위가 있는 탁 트인 마당이 나타나 마음을 흥분시키며 건물보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레 두드러지는…)을 읽어내고 그것을 구현하려 노력한다면 미래의 우리 자손들도 내가 맛보았던 기막힌 국수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공상 과학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시장 거리처럼….

글·사진 / 조한묵 소장
TAO 건축사사무소 ☎042-823-7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