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미 대북 강경파에 경고

대북 붕괴 바라는 일부 강경파 의견 수용할 수 없다

2006-01-25     편집국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에 한.미 두나라가 합의해 놓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한.미간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을 압박하고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내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가 이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마찰' 또는 '이견'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북한의 위폐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이에대해 명확히 선을 긋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 합의 이후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해 범죄와 관련된 문제라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미국내 일부 강경파들은 공동성명 채택에 불만을 가졌다. 특히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에서 이 문제가 모호하게 처리되자 강경파들은 '실패한 협상'으로 규정하고 협상파들을 비난했다고 한다.

더구나 공동성명 합의 다음날인 9월20일 북한 외무성이 "경수로 제공 없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히자 미 행정부 내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힘을 얻게됐다. 이들은 그동안 은밀히 조사해 오던 북한의 위폐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며 북한의 계좌를 동결하는 등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반면 협상파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됐고 공동성명 타결 직후 추진되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북한 방문도 이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 위폐 문제는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미 행정부내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과 중국, 미국내 협상파는 위폐 문제에 발목이 잡힌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위폐 문제 관련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고 있다. 여기에는 위폐 문제가 북한의 기업이나 개인에 의한 범죄로 북한이 정부 차원에서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이같은 절충안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있었던 북.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간 접촉에서 미측에 전달됐다. 공은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미국의 결단을 남겨 놓고 있다.

문제는 힐 차관보의 귀국이후 미국에서 나오는 시그널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위폐 문제의 경우 명확한 범법 행위인 만큼 6자회담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기존의 원칙적인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북한의 위폐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마카오와 홍콩, 중국 방문을 마치고 방한했던 대니엘 글래이저 미 재무부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는 24일 위폐 문제는 북한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금융제재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이례적으로 미 대사관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위폐 문제와 관련해 사실 관계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에게 하고 싶었던 말로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려할 경우 '마찰','이견'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위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근거'나 '주변국의 인식', 그리고 '북한 정권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따져 사실 확인과 관련국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 재무부 조사단의 설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미국으로 부터 받은 정보 만으로는 북한 정부가 개입됐다고 단정하기 이르다는 의미다. 나아가 미국의 의도가 북한 정권을 압박하려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위폐 문제를 북한 정권 차원의 범죄로 기정사실화하며 대북 강경책으로 몰아가겠다는 의도를 경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언급은 공동성명의 큰 합의를 이루고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내 강경파의 득세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를 경계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CBS정치부 감일근 기자 stephano@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