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과 결혼사이에 생긴 일
K생명보험회사에 다니는 김모양(26)은 요즘 결혼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는 날이 많아졌다.
김양은 작년 12월 초순경 아는 언니의 소개로 박모씨(30)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별다른 호감이 없었는데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의 학력·직업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에 끌렸고 그의 프러포즈를 받은 후 결혼을 약속했다.
만남 초기에 박씨는 자신이 서울 소재 명문대를 나와 지금은 모 제약회사의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양가의 허락을 받아 지난 5월 중순 친지와 친구들을 초청, 약혼식을 올렸다.
올 가을에 결혼하기로 하고 교제하던 중 박씨에 대한 믿음이 깊어져 그의 성관계 요구에도 응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구청 시설과에 갔다가 박씨를 보았다는 것이다.
김양이 확인해보니 약혼자는 공고를 졸업하고 현재 구청에서 기능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약혼자는 김양이 좋아서 결혼하고픈 마음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는데 만남이 깨질까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김양은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혼은 절대 안돼고 약혼 예물도 돌려받아 오라고 한다. 김양도 약혼자에 대한 신뢰를 확신할 수 없어 파혼을 하고 싶은데 가능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 민법은 제804조에서 약혼 후 타인과 간음한 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등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 약혼을 해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 8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밖의 사정으로 파혼하는 경우 당사자 일방은 과실있는 상대방에 대해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파혼시 약혼예물에 관해서는, 당사자 일방의 잘못으로 약혼이 파기된 경우 그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예물은 반환하되, 상대방에게 예물의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
또 약혼 중에는 동거의무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성관계 요구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해석되며, 약혼 중 성관계로 정조를 상실하였다는 이유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판례가 이를 긍정하고 있다.
김양의 경우 우리 민법상 법정해제사유 중 제8항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 지가 문제된다.(물론 약혼이나 혼인의 경우에는 서로간의 애정이 가장 중요하므로 상대방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고 받아들이면 별 문제는 없을 듯)
여기서 ‘기타 중대한 사유’란 ▲약혼과정에서 당사자 본인의 연령 직업 경력 재산 등을 속인 경우 ▲사기 착오 또는 강압에 의한 경우 ▲재산상태가 악화된 경우 ▲애정상실 등 요컨대 앞으로 혼인하더라도 행복한 혼인생활을 기대하기 곤란한 경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판례를 보면, “약혼은 혼인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의 예약이므로 당사자 일방은 자신의 학력, 경력 및 직업과 같은 혼인의사를 결정하는데 있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해 이를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고지할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가 있다.
이러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한 행위로 믿음이 깨져 인격적 결합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민법 소정의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양의 경우는 상대방이 허위로 고지한 학력 및 직업 등을 믿고 약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므로 이는 약혼의 법정해제사유의 하나인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양은 박씨에게 손해 배상할 필요없이 약혼을 파기할 수 있다.
또 본인이 받은 예물을 반환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준 예물의 반환을 청구할 수도 있으며, 약혼파기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다.
다만, 김양도 상대방의 학력이나
직급 등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경솔히 약혼을 한 잘못이 있으므로 위자료 액수산정에 참작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 약혼 중
성관계로 인한 위자료 청구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