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신화 다시 썼다'

2006-02-26     편집국

[토리노=백길현기자/노컷뉴스]한국이 쇼트트랙 신화를 이룩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26일(한국시간) 벌어진 쇼트트랙 경기 3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안현수(한국체대)와 진선유(광문고)는 대회 3관왕에 올라 세계 최고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위풍당당한 한국 선수들의 기세 앞에 어떠한 견제도 통하지 않았다. 한국은 26일 새벽 이탈리아 토니노 필라벨라 빙상장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여자 1000m와 남자 5,000m 계주에서 또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멈추지 않는 질주,男 5000미터 계주서도 '金'…女 1000미터서도 금빛

남자 5,000m 계주는 올림픽 기록(6분43초386)을 세우며 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이후 14년만에 금메달을 따내 기쁨을 배로 늘렸다. 안현수, 이호석(경희대), 서호진(경희대), 송석우(전라북도청)를 내세운 한국은 레이스 초반 3위를 지키며 신중하게 플레이를 했다.

18바퀴를 남겨두고 안현수가 처음 1위로 나섰지만 다시 8바퀴를 남겨두고 캐나다에 밀려 2위로 쳐져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최종 주자로 나선 안현수가 반바퀴를 남겨놓고 위력적인 스피드로 단숨에 역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로 쇼트트랙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앞서 벌어진 여자 1,000m 경기에서도 진선유가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 선배 최은경(한체대)과 중국의 왕멍, 양양 A와 함께 결승에 오른 진선유는 1,2위로 나란히 나선 중국의 견제로 인해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한채 줄곧 3위로 달렸다.

그러나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2위로 달리던 양양 A를 제친 진선유는 여세를 몰아 3/4 바퀴 가량을 남기고 선두 왕멍까지 가볍게 체쳐 단숨에 메달을 금색으로 물들이는 위력을 발휘했다. 최은경은 3위로 들어왔지만 실격처리돼 아쉽게 동메달을 놓쳤다.

한편 남자계주 금메달의 일등공신인 안현수는 500m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금메달은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폐막 하루를 남겨둔 현재 종합 6위를 기록해 역대 최다 메달이자 최고 성적을 기록했으며, 남녀 쇼트트랙에 걸려있는 총 8개의 금메달 중 6개를 휩쓸었다.

◇ '희생정신'이 집안싸움 한국 쇼트트랙 살려냈다

안현수와 진선유 선수의 올림픽 사상 첫 3관왕을 비롯한 숏트랙 금메달 6개는 그동안의 역경과 내분을 딛고 일어선 것이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결과를 지켜보자,나는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서도 내분을 격고 있는 쇼트트랙 대표팀에 대한 징계 요구가 거셌을 때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이 한 말이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사실 동계올림픽이 임박해서까지 내분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코치진 선임 문제를 놓고 벌어진 학부모들과의 대립은 선수들의 선수촌 이탈,폭행 사건 등을 낳았고 올림픽 개막 한달 전까지코치와 선수들이 끼리끼리 분리돼 훈련을 하는 등 갈등을 빚어 왔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내분에 쇼트트랙 강국의 이미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었으나 당시 선수들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들이었다.

학부모와 코치들의 손에 이끌려 선수촌을 이탈하기도 하고 팀웍이 중요한 쇼트트랙에서 서로 떨어져 훈련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어른들의 다툼에서 벗어나려는 듯 오히려 훈련에만 열중했다.

이에리사 선수촌장의 말대로 '선수들을 믿어야하나' 걱정이 많았던 상황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은 우리 선수 끼리의 메달 경쟁을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리노에서의 어린 선수들은 어른들의 갈등과는 반대로 팀성적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남자 1천오백 미터 이호석의 은메달, 여자 1천오백 미터 변천사의 노메달이 금메달 보다 더욱 값지게 보인 것이 이 때문이다.

한국올림픽 사상 첫 3관왕 두명.동계올림픽 역대최고 성적은 우리 선수들의 기량과 함께 이같은 마음가짐이 빚어낸 결과였다.


◇'2인자' 이호석 "이젠 아쉽지 않아요"

안현수(한국체대)의 금메달에 가려 빛을 일었던 이호석(경희대)이 26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의 팔라벨라 빙상장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안현수, 서호진(경희대), 송석우(전라북도청)과 함께 출전해 극적인 금메달을 일궈냈다.

이호석은 생애 첫 출전이었던 이번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5,000m 계주 금메달을 비롯해 1,500m와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이 종합성적 7위에 오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경기 후 만난 이호석은 "개인전보다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훨씬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며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진)선유도 그런 말을 했는데 공감이 간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의 표정에서 더 이상 아쉬움은 묻어나지 않았다. 이호석은 지난 13일 첫 금메달이 나왔던 1,500m에서 안현수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안)현수 형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하지 않았다'고 밝혀 지켜보는 팬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19일 1,000m경기에서도 안현수에 간발의 차로 뒤져 또 다시 은메달을 목에 걸어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호석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같은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땄으니 괜찮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노린 것이 1,000m와 1,500m 금메달이었는데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토하기도 했다.

더욱이 500m 경기를 앞두고 "단거리에 약한 편이지만 마지막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해 금메달을 노려보겠다"는 각오를 밝힌 그는 이날 5,000m 계주에 앞서 벌어진 500m 준준결승에서는 두 바퀴를 남기고 코너를 돌다 미끄러져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추스리고 5,000m 계주에 나서 우승을 일궈낸 이호석은 "다 같이 힘을 모아서 금메달을 따서 그런지 기쁨이 훨씬 더 큰 것 같다"며 마침내 환하게 웃어보였다.

◇3관왕 진선유 "귀국하면 놀러가고 싶어요"

여자 쇼트트랙 1,500미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에 오른 진선유는 이날 경기에서 막판 폭발적인 질주로 관객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진선유는 3위로 처져 있었다. 1,2위에 나란히 나선 중국의 왕멍과 양양A가 사선으로 달리면서 진선유를 견제했다. 그러나 진선유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양양 A를 따돌리고 2위로 나서더니 순식간에 왕멍까지 제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3관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여자 1,500m와 3,000m 계주에 이어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3관왕 위업을 달성한 진선유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좋은 성적 내서 기쁘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3관왕이 나온 거라고 해 아주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특히 진선유는 막판 역전극에 대해 "오늘 세운 전략은 시작부터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었는데 중국이 스타트가 빨라서 1,2번으로 나갔다"며 "따라서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치고 나가는 전략으로 마지막 한번의 기회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경기 내내 18세 소녀답지 않은 침착함과 과감함을 보여준 진선유는 "한국에 돌아가면 놀러가고 싶다"며 십대 소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도 밝혔다.

◇남자 계주 고참 3인방, 아쉬운 은퇴

남자계주 금메달을 이끈 고참 3인방 송석우(23 ·전라북도청),오세종(24 ·동두천시청),서호진(23 ·경희대)이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날 예정이다.

26일(한국시간) 5,000m 계주 결승이 끝난 뒤 송석우와 오세종은 “이번 올림픽이 대표팀으로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치뤘다”며 “쇼트트랙의 경우 좋은 후배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만큼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국 선수들의 경우 어려서부터 훈련강도가 매우 강해 20대 초중반이 되어도 체력이 10대 후반이나 20대초반과는 다르다는 것이 선수들의 설명.

이번 계주에서 그동안 금, 은메달을 따내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후배 안현수(21·한체대) 이호석(20 ·경희대)과 함께 금메달 획득을 합작했지만 앞에서 묵묵히 이끈 선배들은 여전히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은퇴를 결심한 선수들에게는 이번 올림픽에서 겪은 아픔이 하나씩 있다. 스타트가 한국 선수중 가장 빠르기로 정평이 나있는 송석우는 이번 올림픽에서 당초 500m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500m 시작 전 스케이트 날 상태가 좋지 못해 출전을 포기하고 서호진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송석우는 “4년간 500m만 보고 훈련했는데 출전하지 못하게 되어 정말 많이 울었다”라며 그동안의 속앓이를 털어놓았다. 송석우는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서 5,000m를 열심히 연습해 금메달로 나의 마지막 대표선수 생활을 마감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좋다”고 밝혔다.

오세종 역시 이번 올림픽에 아쉬움 한가닥이 남았다. 준결승에는 출전했지만 결승전에서는 링크에 오르지 못했던 것. 오세종은 준결승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져 한국이 결승 진출을 하지 못할뻔 했다는 생각에 자책도 했다.

오세종은 “물론 결승 무대에 서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5 명중 4명이 나가는 것이기에 누구 하나는 양보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섭섭함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서호진 역시 송석우 대신 출전한 500m 경기에서 실격으로 예선 탈락했다.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탈락한 것도 아쉬웠지만 네티즌들이 “팀의 내분으로 서호진이 대신 자리를 꿰찬 것 아니냐”는 추측성 댓글에 마음이 아팠다. 서호진이 비난 받는 상황에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는 출전을 양보한 송석우다. 송석우는 “정말 제가 출전할 여건이 되지 못해서 출전하지 못했던 것 뿐인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호진이의 성적도 좋지 못해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다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릴레이에서 모두 한마음이 돼 금메달을 따내며 고참 3인방은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렸다.

"앞으로도 운동은 계속 할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만일 대표팀에서 저희가 또 필요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함께 할겁니다"는 오세종의 말에 그동안 고참 선수들이 묵묵히 흘린 땀방울이 엿보였다.


토리노=CBS체육부 백길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