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리옹 발레 대전 초연

3人 3色…한 무대 또 다른 세계

2006-03-11     홍세희 기자

쉽게 볼 수 없는 최고의, 최상의 공연이 드디어 막을 올린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과 대전도시철도 개통 축하공연으로 마련되는 프랑스 국립 리옹 발레단을 초청 공연이 그것. 3월 11일(토)과 12일(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상상만으로도 화려함 그 자체다.

이번 공연은 한 무대에서 ‘마기 마랭’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그리고 ‘사샤 발츠’ 등 3인의 여성 안무가가 각기 다른 색채의 몸짓으로 물들이며 모던댄스의 진수를 한껏 뿜어 낸다. 또한 리옹 발레단 특유의 다이내믹하면서도 명확한 열정적인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

현대 무용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유럽 최고의 3인의 여성 안무가가 전해주는 놀라운 상상력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여성 3인 안무가는 누구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maeker

프랑스 뚤루즈 태생인 마기 마랭은 스페인계 프랑스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여덟살에 뚤루즈 콘서바토리에 입학, 무용을 시작하였다.  열여섯 살 되던 해 마기 마랭은 뚤루즈 콘서바토리 최고상을 수여한 후 파리로 가서 1년간 발레리나 NinaVyroubova와 함께 수학하였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마랭은 스트라스부르그 오페라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그곳에서 ‘백조의 호수’와 ‘지젤’ 등의 고전발레에서 솔로로 활약하였다.  1972년 마랭은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에 의해 세워진 브뤼셀의 Mudra 무용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그녀는 그룹 Chandra의 창립 멤버로서 활동하였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그녀는 모리스 베자르의 20세기 발레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76년에는 이 무용단을 위해 ‘Yu-Kuri'를 안무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또한 안무가 Carolyn Carlson과의 공동작업으로 'Ab', 'Vous Dirai-je maman', ’Aqua alta', 'Notre Faust' 등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듬해 그녀의 첫 전막작품인 ‘바벨, 바벨’은 샹젤리제 극장의 시즌 작품으로 올려지는 기회를 얻었으며, 이어 파리오페라 안무가 리서치 그룹으로부터 위임권을, 그리고 프랑스 문광부로부터는 Gran Prix National Award for Choreography를 수여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1985년 마기 마랭은 리옹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프로코피예프의 ‘신데렐라’를 안무하였는데, 이는 1987년 뉴욕에서 미국 초연을 가짐으로써 어마어마한 성공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듬해 그녀는 Order of Arts and Literature에서 기사직을 부여받는 영광을 안았다.

그녀는 그녀의 무용단을 위해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반면 외부 무용단으로부터도 꾸준히 안무의뢰를 받아왔는데,  ‘Grossland'(네덜란드 국립 무용단), ’Made in France'(네덜란드 댄스 시어터3), 'Coppelia'(프랑스 리옹 오페라 발레)들이 그러한 작품들이며, 또한 작품 ‘Ay Dios'는 파리 오페라의 두명의 에뚜왈을 위해서 특별히 안무한 작품이다. 

특히, 프랑스 리옹 오페라 발레에서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상임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들은 라 스칼라 발레, 플로렌스 오페라 발레, 낭트 오페라 발레와 발레 아틀란티코 등에서 공연되어지고 있다. 2003년에 마랭은 모던 댄스에서의 그녀의 공로를 인정받아 Samuel H. Scripps/American Dance Festival Award를 수상하였다. 

사샤 발츠/Sasha Waltz

1687년 22세의 Jean-Pierre Leguay는 Lully가 세상을 떠난후 Lyon에 뮤직 아카데미 설립권을 얻는다. 처음 설립 1년 동안 아카데미에는 단지 두 명의 무용수만 있었으나 리옹은 후에 무용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1759년 Georges Noverre는 리옹에서 Camargo라는 작품을 제작한 후 그의 저서인 Lettre sur la danse를 출판했다. 그 후 이 작품은 리옹 발레를 알리게 되었고, 이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성 있는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리옹 오페라 발레단의 진정한 창립자는 1969년 이래 완전한 자치성을 인정한 리옹 오페라단의 예술 감독이었던 Louis Erlo라 할 수 있다. 1977년 Mikko Sparemblek에 이어 '20세기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던 Vittorio Biagi가 첫 예술감독이 되었고, 이후 1980년도에는 Gary Veredon이 그 뒤를 이었다.

‘리옹 오페라 발레단’으로 개명한 단체는 1985년 새로운 예술감독인 프랑소아 아드레의 노력덕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는 당시 젊은 마기 마랭에게 프로코피에프 음악을 바탕으로 한 작품 ‘신데렐라’를 공연하도록 요청했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 이래 프랑소와 아드레와 함께 발레단의 공동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요르고 루코스는 이번에는 Angelin Prejocal에게 프로코피에프 음악을 바탕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0년 이 작품은 Enki Bilal 의 무대디자인과 의상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3년에 마기 마랭에 의해 유머러스하게 업데이트된 세 번째 작품 고전 '코펠리아‘는 리옹 오페라 발레단의 명성에 힘을 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1993년 12월에 예술감독을 사임한 프랑소와 아드레를 이어 단독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요르고 루코스의 명성에도 큰 힘을 실어주었다.

현재 원래 이름인 ‘리옹 오페라 발레단’이라는 단체명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 단체는 31명의 무용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레파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미국에 10회 이상 초청된 유일한 프랑스 단체인 리옹 오페라 발레는 약 40개국에 걸쳐 세계 투어 공연을 가지고 있으며, 매 공연마다 리옹 발레단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명확하며 열정적인 스타일로 큰 명성을 꾸준히 얻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