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 무자격자 웬말
시민단체, 친일파·쿠데타 주역 등 이장 추진
국방부 “법적 문제없다” 주장
지난 6월 6일 ‘친일파 김창룡의 묘 이장’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던 대전국립현충원. 그로부터 10일 후 취재차 현충원을 찾았다. 정문을 들어서는데 헌병대가 차를 세우고 선양계 직원이 달려 나온다. 요지는 ‘하루 전에 결재를 받아야 취재가 가능하다’는 것. 경찰과 충돌이 있은 후 현충원의 경계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현충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는 지난 2002년부터 현충원 앞 집회를 해 왔다.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 국립묘지에 일제시대 친일을 자행했던 인물이 묻혀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다. 2001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으로 있던 여인철 씨는 언론보도를 통해 ‘6·25전몰군경미망인회’의 항의 사실을 알게 된다.
친일인사 김창룡(1920~1956)의 묘가 대전 현충원으로 옮겨진 것은 1998년 2월의 일이다.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를 틈타 국방부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주관으로 초대 부대장격인 김창룡을 대전으로 이장했다. 1950년 10월 육군본부 직할로 창설된 특무부대는 기무사령부의 전신.
김창룡은 1951년 육군 특무부대장을 지냈고 1955년 소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전국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여인철 씨는 “김창룡은 일제 때 일본 관동군헌병대의 밀정으로 있으면서 만주 항일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50개가 넘는 항일독립군 조직을 적발한 전과를 가진 군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갖은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있는갚라며 분노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암살당한 김 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1856~1939)와 아들인 김
인(1918~1945) 선생의 묘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를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들은 ‘친일군인 김창룡묘 이장’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삼일절 광복절 현충원을 찾아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지만 점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장불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국립 현충원 선양계 한 관계자는 “우리는 규정에 따라 묘역을 관장하는 업무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장의 당위성 등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에 지시에 따른 것이기에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어떠한 답변을 했을까. 대답은
단호하다. 국립묘지령 15조에 의거 피안장자의 유가족으로부터의 이장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한번 묻고 나면 나중에 어떠한 결격사유가 있어도 유가족이 원하지 않으면 이장할 수 없다는 논리다.
김창룡의 과거사를 모를 리 없는 국방부가 엄격한 심사를 거치지 않고 이장을 지시한 것은 분명 옳지 않은 처사다. 법조항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함께 묻히게 될 다른 장교와 사병들, 애국지사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가족들의 처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배우자, 친척이라 하더라도 잘못한 것은 분명히 인정하고 그에 맞는 처우를 받는 것이 맞다.
김창룡의 후손들은 그의 사설묘비를 충남 금산의 한 승마장 인근에 두었다가 그 사실이 발견되자 땅속에 묻어버렸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으로
활동하던 여인철 씨는 “우리 남편은 애국자인데 왜 국립묘지에서 나가라고 하느냐.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법적으로 고발하겠다”라는 미망인의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
김창룡 이외 다른 인물은 없나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묘지에는 김창룡 외에도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유학성 전
의원(1927~1997)이 있다.
12·12당시
수경사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핵심인물로 군형법상 반란주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확정판결을 기다리는 중에 사망해
무죄처리되었다.
국립묘지령 제3조에 의하면 전역 및 퇴역한 대상자 중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유예중에 있는 자’ 등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국립묘지 안장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는 ‘피고인 사망시 공소기각’ 등의
법리를 내세우며 유 전의원의 국립묘지 안장을 허용했다.
또 한사람 국가유공자묘역에 안장돼 있는 오제도 검사(1917~2001)가 있다.
한국전쟁 직전 전향 좌익인사들에 대한 집단학살을 빌미를 주었던 ‘보도연맹’을 주도한 인물. 오 검사는 한국전쟁 당시 군검경 합동수사본수
총지휘관을 맡았으며 김창룡 씨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이었다. 1956년 진보당사건 당시 조봉암 진보당 당수의 사형선고를 이끌어내 이승만 정권의
대표적 정치재판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사실 현충원에 안장돼 있던 묘가 이장된 사례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2004년 6월, 친일행위가
드러나 서훈이 취소된 서춘(1894~1944)의 묘가 이장된 바 있다. 서춘은 2·8동경유학생 독립선언 실행위원을 역임한 공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89년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나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는 등 친일이력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현충원이 서훈의 묘비를 제거한 것은 애국지사 서훈이 박탈된 1996년 이후 8년만의 일이었다.
당시에도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친일파 언론인의 묘 이장을 계속해서 촉구했었다.
당시관계자는 “민족역사 바로잡기는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창룡묘 이전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최근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굴절된
역사를 바로 펴는 일은 시민사회를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지역에는 환경 인권 복지 등 각 분야의 시민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한가지 이슈로
지속적인 연합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참여자치시민연대 송인준 의장은 “숭고한
뜻이 모여 있는 현충원에 반역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장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추진해나가야 한다”며
“제도적 벽에 부딪힌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관계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장운동 초기부터 뜻을 같이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6월 10일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인
대전MBC ‘나우’에 ‘현충원의 그늘-김창룡은 누구인갗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시민단체는 분야를 막론하고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참여단체를 점점 늘려가야 한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있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못한 일에 대해서는 벌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 잘한 사람은 대대로 고통을 받고, 못한
사람은 자손 대대로 떵떵거리며 산다면 이것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에서 어떤
발전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잠깐의 분노’가 아닌 ‘지속적인 분노’를 가져야 할 때다.
취재
/ 이덕희 기자
협조 / 여인철 현 KIAST 감사, 민족문제연구소 전 대전지부장·
전국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우희창 사무국장 /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일제잔재 청산해야 떳떳해질 것”
묘지이장 운동,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민족의 과거사 문제 중에서 일제하 반민족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이장운동에 함께할 것을
민족문제연구소를 통해 제안 받았다. 우리와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던 것.
이장문제가 몇 년동안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 관대한 측면이 있다. 특히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루고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진정한 애국자의 후손이 대우받지 못한다면 국가 기본
기강은 무너진다. 다른 이유로는 현재 기득권 세력의 성향을 들 수 있다. 예전의 친일파들의 자손이 아직도 사회지도층으로 남아있어 시행령 개정 등
친일파 청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프랑스는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나라를 배신한 인물들을 철저하게 청산했다. 독일 또한 나치
부역인사들을 가혹하리만큼 처단한 바 있다. 우리나라 또한 후손에 또 세계에 떳떳하기 위해서는 일제시대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법령개정을 위한 전국모임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은 더욱 연합하여 맡은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