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남용은 어디까지

2005-09-03     편집국

특정 사안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하는 것도 ‘권한’이라고 한다면 이 땅에서 그 판단의 권한은 국민과 언론에 있지 않고 칼자루 쥔 쪽에 있다. 시민단체가 연일 반대성명을 내고 언론이 비판해도 석가탄생일 기념식 날 경제인 특별사면은 단행되고 말았다.

권력자의 마이동풍, 우이독경이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정치인`고위공직자 및 주요 경제인 등 소위 ‘부패 엘리트’들에 대한 선고형량을 높이기로 작정했는데 그것은 솜방망이 처벌이 부패 불감증-재판 불신-국민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대한 자기비판이었다. 대검 공판송무부 또한 올 2월 형 집행정지 제도의 무원칙성을 인정, 특혜시비가 붙은 형 집행정지의 요건을 강화하는 새 지침을 일선 검찰에 내려 보냈다. 수술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형 집행정지를 불허하고, 풀려난 위장(僞裝)환자들은 조사해서 재수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법원과 검찰의 이 의지는 권력 앞에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고 말았다. 2주 전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옮긴 정대철 전 의원의 병실은 줄 잇는 문병객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3개월 형 집행정지 사유로는 ‘중증 혈관경련성 협심증’으로 급사(急死)의 우려가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권 인사들이 찾아가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얘기다.

입심 좋기로 소문난 노회찬 민노당 의원은 작년 10월 서울고법 국감장에서 정치인들의 잇단 감형처분을 빗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고 쏘아붙였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노 대통령의 보은(報恩)사면과 제갈 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서기 227년 위(魏)나라 사마중달 과의 큰 싸움을 앞두고 있던 촉(蜀)의 공명은 딱 한 가지 불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군량미 수송로인 가정(街亭)을 급습당하면 싸움은 패전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이때 스스로 가정 사수를 자청한 인물이 바로 마속이었고, 그는 공명이 대성(大成)을 예감한 패기 찬 인재였다. 그러나 마속은 경솔하게도 공명의 계책을 어긴 대가로 참패하고 말았다.

공명은 군율(軍律)에 따라 그의 목을 베었고 그 인물의 아까움에 엎드려 울었다. 부하들이 참수를 만류했을 때 공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를 잃는 것은 국가의 손실이다. 그러나 그를 베지 않으면 국가는 더 큰 손실을 입는다”고 이처럼 공명은 대의(大義)를 위해 사정(私情)을 버렸던 것이다.

정대철, 이상수, 안희정씨 같은 인물들이 호시탐탐,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기다리면 대통령의 사면이나, 복권 통지서가 날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8월 광복 60주년에 부패정치인 사면을 단행한다면 ‘정략적 대사면’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사면 권 행사를 엄격하게 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략적 사면`복권이 법을 우습게 알고 무권유죄(無權有罪)의 원성을 낳아 국민 대통합은커녕 정부 신뢰만 추락시켜 왔음을 두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8`15 정치사면을 밀어붙인다면 실로 ‘권력의 오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노태우 정권 이래 지금까지 사면`복권된 196명의 ‘노블레스’들을 분석한 결과 법원의 선고형량은 평균 2년 6개월인데 비해 형을 산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이것은 국내 법률가의 87%가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비리 정치`경제인 구제수단”이라고 믿는다는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와도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사면이 부패를 낳는다’는 지적의 의미를 되새겨 이 땅에서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그래서 대의를 위해 정리(情理)를 끊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최원기 / 편집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