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의 交戰者
사람은 누구나 복수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하나는 가지고 싶어 하는 소유의 고민이며, 다른 하나는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표현의 고민이다. 전자는 부(富)와 관련되고 후자는 명예와 관련된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다 버릴 수도 없거니와 그 중 어느 한가지만으로써 만족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숙명적으로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옛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지지자(持志者)와 교전자(交戰者)로 규정하고 있다. 앞의 것은 뜻을 세웠다하여 주일자(主一者)라하고 뒤의 것은 뜻을 세우지 못했다하여 불능주일자(不能主一者)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一)이란 무엇인가? 일은 곧 성(誠)을 의미한다. 자연은 주일자의 원형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가슴 속에 두 가지의 교전 인자(因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인자란 성(誠)과 사(邪)를 말한다.
성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며(誠者 主於不詐欺), 사는 스스로를 속인다는 뜻(自欺之謂邪)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거짓말 잔치로 들떠있다. 검찰당국의 실증적인 추적에 몰리게 되면 책임전가의 술수를 동원하고 그래도 피해갈 길이 없을 때에는 모르는 일이라 잡아뗀다. 일부에서는 대가성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고 우겨대는가 하면, 또 다른 편에서는 일반화된 관행에 따랐을 뿐이라면서 거의 죄책감마저도 느끼려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황을 이루고 있는 공통된 특징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성실의 원칙에서 너무나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성실성을 잃게 되면 마음이 썩어가고 인격이 붕괴된다. 그리고 사회가 신뢰성을 잃게 된다면 사회적 정의가 혼미해지고 공명 질서가 문란해진다. 그렇게 되면 인간도 사회도 떳떳하게 살아가기란 지극히 어려워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불행한 현실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虛心) 사욕으로부터 탈피(虛己)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한다. 다른 이에게로 넘어갈 것을 두려워해서
권력의 주먹을 펴지 못하고, 숨겨둔 이권을 잃을까 두려워서 양심을 속이고, 가면 속에 숨긴 위장된 명분을 포기할 수 없어서 집단의 힘을
내세우려는 위장의 탈을 벗어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멸사봉공이니 살신성인이니 하고 그토록 외쳐대던 그
한마디의 구호라도 가슴에 손을 대고 되뇌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교전자를 몰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유혁
총장 / 금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