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외곽버스 타고 떠나는 마을여행

마을여행에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삶이 있었다!

2012-04-27     월간토마토 이용원

변두리와 외곽은 묘한 ‘포근함’과 여유를 준다 (사)대전문화유산울림이 <대전 외곽버스 타고 떠나는 마을여행> 14개 코스를 개발했다. 대전 외곽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아침에 시작해 점심식사 후 마무리하는 길지 않은 여행이다.

안여종 대표는 “코스는 그동안 진행한 다양한 답사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차차 채워나갈 계획이다”라며 “외곽버스 타고 떠나는 마을 여행에 어떤 내용을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지는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구체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0일 진행한 첫 번째 여행에 월간 토마토가 동행했다. 가수원 네거리에서 26번 버스를 타고 평촌동 증촌마을에 도착해 시누리마을까지 걸은 후 그곳에서 23번 버스를 타고 다시 가수원 네거리에 도착한 여행이었다. 여행에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가량이다.

◆ 시누리 암석에 새긴 한자 수수께끼
대전 서구 가수원동 네거리에서 은아아파트 쪽으로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 남대전농협이 있다. 그 앞 버스정류장에서 26번 버스를 탈 수 있다. 버스정류장이 약속장소다. 시간에 맞춰 모여든 <대전 외곽버스 타고 떠나는 마을여행> 참가자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버스가 도착한다.

9시 40분에 서부터미널을 출발한 26번 버스는 9시 50분쯤 가수원 네거리에 들어섰다. 자리는 넉넉하다. 1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승객과 기사 모두 호기심이 동하는 눈길을 보낸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무척 포근하다.

도심을 운행하는 버스와 달리 외곽버스는 기분 좋은 나른함과 여유가 있다. 버스 내부에 흐르는 시간의 흐름도 다르다. 도심과 농촌, 그 경계 즈음에서 출발해선지 얼마 달리지 않아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차창 밖 풍경이 새롭다.

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볕에 막 기지개를 켜는 농촌 들녘 모습이다. 이십여 분 달린 버스는 종점이자, 마을 여행 시작지점인 평촌동 증촌마을에 남은 승객 모두를 내려놓는다. 종점에는 수형이 아름다운 노거수 한 그루가 서 있다.(이번 호 월간 토마토 ‘대전 노거수를 찾아서’ 참고) 사람들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 노거수로 향했다. 나무 아래서 마을여행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여행 일정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 마을은 끊임없이 말을 건다
증촌마을은 무송 유씨 집성촌이다. 월성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 앞에는 갑천이 흐른다. 꽃길 가꾸기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벌였다. 동네 주민마다 꽃 피는 봄에 와야 마을이 예쁘다는 이야기다. 널찍한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 왕바우를 먼저 본다. 마을 주민은 마을 북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용산 머리 부분에 놓인 여의주로 여기는 모양이다.

과거에는 치성을 드리고 제를 올리며 정성껏 위하던 바위다. 삶과 함께한 바위를 볼 때마다 바위가 무생물이며 영혼이 없다는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까 의심스럽다.

햇살 내리쬐는 마을 골목을 유유히 걸으며 삶이 만든 흔적을 엿보는 게 조금 민망하면서도 무척 즐겁다. 집 앞 텃밭에 정성스럽게 골을 내는 아주머니 모습과 골목에 농기계를 세워 두고 나사를 조이는 아저씨,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강아지, 장독대와 가지런히 놓인 신발, 마을 곳곳에 정성스레 만들어 설치한 토기 조형물까지 끊임없이 말을 건다.

선방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화두’를 넌지시 건네는 노승이라도 만난 느낌이다. 도심에서 보는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이곳에 쌓인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 같다.일행은 마을 뒷산에 올랐다. 마을 초입 느티나무 아래서도 보였던 산이다. 산에 잘 정돈한 묘지가 참 많아 인상적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뚜렷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아 강한 여운을 주었던 공간이다. 직접 올라가 내려다본 마을 전경은 아름다웠다. 유유히 흘러가는 갑천 너머로는 꽃산이 눈에 들어오고 북서쪽을 향해 흘러가는 갑천을 따라 시선을 두니 용산의 자태가 요염하다. 왕바우는 삶과 죽음의 그 경계 즈음에 놓여 있다.

밑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조그맣다. 남아 있는 이들은 먼저 떠난 이를 이곳에 모셔 이런 아름다운 마을 풍경과 삶을 보여주며 안타까움을 달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 아름다운 갑천 상류 오솔길
산을 한 바퀴 돌아 마을 사업으로 만들어 놓은 꽃길 탐방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왔다. 처음 시작했던 느티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서 신선바위를 찾았다. 병풍처럼 산자락을 곧게 받치고 있는 넓은 바위다. 이곳에서 낚시를 했고, 그렇게 낚시를 할 수 있어야 마을에 좋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단다. 어설프게 농지를 갈라놓는 것보다 산 쪽에 바짝 붙어 갑천이 흘러줘야 양질의 농지가 그만큼 더 확보되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함께 전한다.
무척 논리적인 추론이다. 제방이라는 걸 쌓기 전, 갑천의 흐름이 지금과 같았을 리 없다. 수량과 상황에 따라 물길을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잡았을 게다. 현재의 제방길은 반듯해 지루한 감이 있지만 옆에 흐르는 갑천이 워낙 다양한 생태계를 품고 있어 예쁘다.

갑천상류라서 외지인이 찾아와 버린 쓰레기를 제외하고는 제법 물도 맑다. 철새도 아름다운 풍경에 자태를 더한다. 제방 중간 즈음에 다다르면 오제왜개연꽃군락지를 볼 수 있다. 자연군락지다. 일본 오제라는 지역에서 발견돼 이런 이름으로도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발견돼 남개연이라고도 부른다. 오월 중순 정도면 꽃이펴 10월 말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제방길이 끝날 즈음 만나는 산자락 오솔길은 이번 여행 코스 중 ‘최고’로 소개하고 싶다. 갑천을 가둔 산자락 오솔길은 물과 나무와 하늘과 마을을 모두 담고 있다. 고요함과 따뜻함, 하늘빛을 가득 담은 갑천까지 어우러진 풍경은 경외감을 준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든다. 그리 길지 않은 300m 남짓한 오솔길이니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 한다. 바라보고 머릿속을 비웠다가 다시 생각 채워넣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오솔길에서 빠져나오면 미림이 마을이다.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들녘에 서 있는 나무와 그 곁에서 밭을 일구는 주민의 모습이 아름답다. 노동의 신성함과 고됨을 모르며 감정과잉에 빠진 철딱서니 없는 감상만은 아니다. 하늘과 산, 마을, 나무, 사람까지 어우러진 풍경은 잊었던 삶의 근원을 일깨운다. <외곽 마을 여행>이 주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 시누리 암석에 새긴 한자 수수께끼

조금 이르지만 이곳 용촌정에서 점심 도시락을 꺼냈다. 용산이 품고 있는 용머리 바위에 세운 정자다. 거대한 느티나무와 함께 있다. 용머리 바위를 한쪽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사람 얼굴이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바위에서 얼굴을 그려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점심식사 후 이번 여행 코스에 포함하지 않은 ‘정뱅이마을’ 곁을 지나 갑천을 건너 시누리로 향한다. 하천정비사업으로 갑천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를 놓고 있었다. 아치형의 다리는 규모가 무척 컸다. 주민 편의시설이라는 측면에서 다리야 꼭 필요한 시설이겠지만 과하다 싶게 크다.

참가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수군수군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간다. 대부분 안타까움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농로를 따라 걷다 보니 버스가 오전에 지나친 마을에 도착한다. 이번 여행지의 마지막 종착지인 ‘시누리 마을’이다. 삼로정, 혹은 세노리라 불렀던 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을 초입에 있는 거대한 암석과 그 사이에 자라는 느티나무가 예사롭지 않다. 암석 곳곳에는 다양한 한자가 적혀 있다.

이번 여행 참가자들은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암석에 새긴 한자어를 발견하며 소소한 흥분 상태를 즐겼다. 그중 비교적 크고 선명하게 새긴 수목(樹木), 암석(岩石), 전부(全部), 동(洞) 이라는 한자어를 발견했다.

이제 이 한자를 엮어 스토리를 유추하면 된다. 우리 선조가 수목과 암석 모두 한 마을을 구성하는 소중한 요소로 인식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 이 마을 초입에 놓여 있는 조그만 바위산과 나무가 개인 소유임을 주장하며 모두 없애버리려 했던 그에게 맞서 동네 주민이 송사를 벌였고 송사에 이긴 후 한자를 새겨 이곳의 수목과 암석은 전부 동네 공동소유임을 천명한 것이란다.

◆ 시내버스가 아닌 외곽버스여야 한다
보물찾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이 버스도착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후 1시 15분 버스를 기다리며 이날 마을여행 참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증촌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풍경이 강한 인상을 준 모양이다. 그냥 스쳐 지나갔던 마을이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소감을 밝힌 참가자도 있었다. 또, 갑천 옆 오솔길의 아름다움도 이야기했다.

<여행>은 그 행위 자체로 매력적이다. 국어사전은 <여행>을 무척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삶이 무거울수록 더하다. 외곽버스 타고 떠나는 마을 <여행>에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삶’이 있다. 일종의 성찰이다. 이것은 우리가 틀어쥐고 있어야 할 ‘참된 가치’에 관한 문제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의 근원에 더 가까운 여행일 수도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외곽’이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외곽버스를 타야 하는 이유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