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토마토, 열살 전라도 닷컴을 만나다
고것도 못 지키면 전라도가 전라도간디
2012-05-04 이수연
암시랑토, 싸목싸목, 항꾸네는 황풍년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전라도의 3대 정신이다.
그리고 늘 ‘싸목싸목(천천히)’ 하라고 말한다. 즉,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진득이 공을 들이면 이룰 수 있다는 인생의 순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 무엇을 하건 ‘항꾸네(함께)’를 되뇌인다. 항꾸네 먹어야 맛있고, 항꾸네 일을 해야 수월하고, 항꾸네 놀아야 재미지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항꾸네 살아야 행복하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전라도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회복해야 할 정신이기도 하다.”라며 그것이 곧 전라도닷컴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한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대인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귀여운 요소가 가득하다. 간판이며 글씨 하나하나가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 안에 있는 전라도닷컴 사무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통 눈에 띄질 않는다.
상가 상인에게 ‘전라도닷컴’ 사무실을 묻자 많은 상인이 ‘저 짝’으로 가보라며 손가락질을 해주었다. “여기네?”하고 찾은 사무실은 참 아담했다. 온통 나무로 된 벽면에 기대어 자전거가 서 있다. 그 앞에 놓인 나무벤치는 시장구경에 지친 사람에게 주는 ‘쉼’이다. 누구라도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갈 수 있게 해놓은 전라도닷컴의 ‘배려’인 것이다.
입구 바로 앞에 놓인 책상에서 차를 마시며 아기자기한 벽면을 둘러보는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천장에 머리가 닿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긴’ 사람이었다. 짧지 않은 회색빛 곱슬머리가 그득히 붙어 있다. 등에 멘 가방을 부산히 내려놓으며 우리가 앉은 탁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책상에 앉아 자리를 편다. 출입문 앞이 그 긴 사람, 황풍년 편집장의 자리다.
전라도닷컴이 뭐야
취재원 대부분이 전라도 곳곳에 사는 어머니, 아버지다. 창간부터 지금까지 전라도닷컴을 등에 업고 온 황풍년 편집장은 “단 한 줄도 책상머리에 앉아서 쓰는 기사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 십 년간 그와 기자들이 전라도 곳곳을 다니며 ‘발품’과 ‘인품’을 팔아 만든 것이 ‘전라도닷컴’인 것이다.
“지역에서 발행하는 매체가 서울 이야기를 담으려 안달하면 안 된다.”라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므로 경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라며 “지역매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언론에서 뿜어내는 기사가 가지고 있는 틀을 두고 “매체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중심’을 잡는다.”라며 “계속해서 중앙언론에서 수도권만을 주목하니 우리 삶의 중심 모두가 서울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마치 대한민국에는 서울만 있는 것처럼 언론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것들도 똑같다.”라며 “대한민국에서 140만 인구가 사는 광주인데 신문을 보면 단 한 꼭지도 광주 관련 기사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구인 ‘우리’만이라도 ‘우리 지역의 삶’을 중심으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황풍년 편집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대로 받아 적는 것, 그것이 진짜 ‘기록’이라는 것이다. 취재원의 말을 표준어로 바꾸는 ‘짓’은 심각한 ‘왜곡’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역색, 지역성이 결코 흠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내세울 수 있고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그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것을 시도한다.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전라도말 경연대회’가 그 중 하나다.
전라도 사람이 나와 전라도 사투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백 번 천 번 밀려들은 엄마 시집살이 이야그’를 해 일등을 거머쥔 김순의(전남 목포) 씨는 “전라도 말 잘헌다고 ‘질로 존상’을 받아붕께 기분이 겁나게 좋아분다.”라며 “밥 굶는 아그들한티도 보내고 여그저그 존 일에 써야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발췌 전라도 닷컴 2012년 3월호)
또 전라도닷컴을 읽는 다른 지역 독자를 위해 홈페이지에 ‘전라도 사투리 사전’이라는 꼭지를 두기도 했다. 그렇게 전라도닷컴은 그들의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전라도닷컴의 지난 10년
전라도닷컴을 아끼는 독자들은 편지를 보내기도 전, 전라도닷컴의 위기를 알아챘다. 그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여 황풍년 편집장을 식당으로 불렀다. 발이 쳐진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몇몇 아는 얼굴과 <전라도닷컴과 광주드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라도닷컴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을 가진 사람이 모여 도울 방법을 궁리하고 있던 것이다. 황 편집장은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순간이었다.”라며 그때를 이야기했다. 한 달 오천 원, 84p 인쇄 잡지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2007년 12월호는 나오지 못했다. 잡지가 나오지 못했을 정도이니 구성원이 겪는 생활고는 어땠을까. 처음 잡지를 시작할 때 함께 했던 기자, 디자이너 대부분이 떠나고 그때의 위기를 겪어내며 지금까지 전라도닷컴을 지키고 있는 기자는 둘이다. 잡지를 보다 보면 ‘남인희, 남신희’라는 이름을 솔찬히(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전라도닷컴이 말하는 세상
황풍년 편집장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우리 더 가난하게 삽시다”라고 말한다. 이에 일 년 남짓 같이 일한 김정현 문화기획부장은 “편집장 겸 사장을 맡고 계신 분이 공공연히 저렇게 말씀을 하시니 저로서는 속이 타죠.”라고 말한다. 김 부장이 처음 전라도닷컴을 만난 것은 학예사였던 그를 전라도닷컴에서 취재하면서부터다. 밖에서 본 전라도닷컴을 김정현 문화기획부장은 “경이로웠다.”라고 표현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놀랐다.”라고 거듭 강조한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라도닷컴’에 몸을 담은 이유를 묻자 “편집장님이 저한테 동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를 모으고 싶은 황 편집장의 절절한 진심이 그를 움직인 것이다.
그들에게 전라도닷컴은 돈벌이가 아니다. 돈을 모으는 사업이 아니라 뜻을 모으는 사업이기 때문에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전라도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문화’가 지난 10년간 전라도닷컴의 굳은 심지였다.
처음엔 몰라주는 사람이 많았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내용이 비슷한 것 같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확실히 다르다.”라고 황풍년 편집장은 못을 박는다.
“취재원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가치 있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토마토의 두 배를 살아남은 ‘형님’으로서 조언을 구하자 “독자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라며 “돈벌이로 접근하는 순간 독자가 알아챌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라도닷컴은 잡지를 보며 ‘향수’와 ‘고향’을 이야기하는 독자층이 두텁다.
창간 10주년 기념호인 2012년 3월호를 보면 애독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잡지 한 권 내내 그 ‘독자’를 만나는 이야기가 그득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2023년 3월호가 구독을 종료하는 때라는 어느 부부의 인터뷰였다. “‘202303’, 이 숫자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라고 남인희 기자는 기사를 시작했다.
얼마나 큰 책임감이 느껴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확고한 믿음을 가지며 잡지 한 권을 받아보겠다고 선뜻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독자를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책임감에 남인희 기자는 ‘가슴이 먹먹’ 했을 것이다.
간간이 구독료를 ‘채소’나 ‘막걸리’로 보내는 구독자도 있다. 매달 ‘딸내미’를 생각하며 바리바리 싼 보따리를 보내주는 친정어머니의 마음 같다.
전라도닷컴은 그렇게, 독자의 ‘믿음’이 세월로 쌓인 잡지였다. 그래서 독자들은 ‘고것도 못 지키면 고것이 전라도간디?’라고 말한다. 그렇게 지역민이 지킨 잡지를 보면서 다른 지역 독자들은 전라도라는 지역이 가진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들이 추구하는 ‘사람냄새’에서 묻어난 가치를 공유한다. 그러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도 전라도 사투리 사전을 들춰보며 전라도닷컴을 구독하는 것이다.
전라도닷컴은 많은 위기를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냈다. 앞으로도 무언가를 급하게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싸목싸목(천천히)’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독자는 물론이고 그들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이라면 ‘항꾸네(함께)’ 할 생각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켜온 전라도닷컴의 정신이며 전라도의 정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