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은 우리가 만든다

전주 사회적 기업 ‘이음’ 들여다보기

2012-06-10     월간 토마토 성수진

무작정 투덜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은 우리가 만들면 된다고 외친다. 그리고 느리지만 굳건하게 우리가 사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 사회적 기업 ‘이음’이다.

어떤 성격의 일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아간다. 여기서 ‘우리’는 표면적으로 ‘이음’의 구성원들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우리’다. 이 글을 쓰는 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우리’ 말이다.

◆ 공간 역시 유기체다.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빨강, 노랑, 하양, 파랑이 네모나게 구획되어 있지만 아기자기하니 서로 잘 어울리는 이곳은 ‘이음’의 사무실이다. 이 공간은 ‘이음’이 벌이는 일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이음’은 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을 여러 방법으로 만든다. 때로는 음악으로, 미술로, 공간 그 자체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이 시너지 효과를 내 함께 사는 사회를 조금씩 바꾼다.

'이음'에게 공간은 우리 삶에서 함께하는 문화다. 하나의 기능으로는 해석할 수 없고 맥락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자본 위주의 일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는 것이 ‘이음’은 안타깝다. 공간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자본가들과 달리, ‘이음’에게 공간은 그 자체로 생명을 지닌 것이다.

한옥마을에 숨을 불어넣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시작했다. 한옥생활체험관을 위탁운영하면서 한옥마을 이야기를 모아 이야기 지도를 만들고, 강좌를 기획하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벌였다. 한옥 생활양식과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다. 단순한 관광지일 수도 있었던 한옥마을은 사람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만들고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 공공 작업을 심심하게 해 보자
“‘이음’의 뿌리는 ‘심심 공작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적 가치를 실현할 작업을 심심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심심 공작소’를 시작했어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태도를 동문 사거리에 발현했습니다.” 김병수 대표는 말한다.

일방적인 도시화가 만드는 회색 도시가 아닌 문화적으로 풍성한 도시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동문거리축제, 동문거리 신문을 만들었고, 점포 갤러리도 만들었다. 도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연구 작업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거리 디자인 프로젝트로 도시경관에 대한 실험도 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여러 일을 벌였다.

공공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을 두고 예술가와 ‘이음’이 동상이몽으로 오해를 빚기도 했다. 동문거리 쪽, 주정차 문제가 심한 곳에 드럼통에 나무를 심고 페인팅해 늘어놓는 프로젝트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때 어떤 작가는 드럼통에 작업하는 것이 작품으로서 퀄리티가 있느냐 물었다. 작가가, 드럼통에 그림 그리는 것을 공공미술 안에서의 행위예술로 볼 것으로 생각했던 ‘이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구성원 몇이 무릎을 꿇었던 일도 있다. 건물에 미술 작업을 했던 때다. 작가의 작업 구상안을 보고 재료가 페인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페인트가 아니라 앵커였다. 오래된 건물에 앵커를 박는 것이 위험해 보여 작가에게 작업을 중단하길 요청하고, 집주인에게 연락해 사과했다. 집주인은 건물을 사라고 했고, 함께 일한 몇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다행히 집주인 아들과 이야기해 보강공사를 하기로 일단락됐지만, 보강공사 할 동안 작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마음이 상한 것이었다.

“가끔 예술가들에게 좋지 않은 소릴 듣기도 하지만, 열 받거나 짜증 나지 않아요.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저에겐 하나의 텍스트가 됐거든요. 예술가들과 더 많이 대화해야 해요. 함께 만드는 것이니까요.”

◆ 노인과 농촌이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

‘이음’은 지금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남부시장에 청년몰을 만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보자.)를 하고 있다. 또 청년을 중심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병수 대표가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청년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한다.

“청년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나이 지긋하신 농민이나 상인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어요. 농촌 사회는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60대 이상이 80%가 되는 환경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라고 할 수 없거든요. 이런 곳에 청년이 들어가면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음’이 청년들로 하여금 노인들에게 덕을 보이는 일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경쟁과 협력이 ‘이음’이 꿈꾸는 노인과 청년의 어울림이다. 그래서 남부시장에 들어간 청년들이 노인들과 진정하게 어울리기를 바란다.

노인의 노동형태가 다양화되는 것, ‘이음’이 꿈꾸는 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 중 하나다. 그런 목적으로 60대 후반 할머니들이 재미있게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할머니 공방을 운영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들이 70대 중반이 되면서 공방 꾸리는 일이 힘들어져 문을 닫았지만, ‘이음’이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뚜렷했다. ‘이음’이 만든 ‘할머니 공방’을 시작으로 많은 곳에 ‘할머니 공방’이 생겨났다.

‘사회’가 아닌 농촌 사회를 ‘사회화’하기 위해서도 여러 일을 벌였다. 농촌마을 컨설팅으로 개발이 아닌 보존의 가치를 나누고, 마을조직을 만들고, 마을의 자연, 역사·문화 자원, 사회자원을 발굴하여 상품화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도시와 농촌 교류 사업을 만들기도 했다. ‘놀토행촌’, 말 그대로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에 농촌에서 체험활동하는 프로그램은 인기가 좋았다.

◆ ‘이음’은 장악하고 싶지 않다

‘이음’이 벌인 여러 사업은 각각 커져 나가 자립하기도 한다. ‘이음’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일, 판을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현실 대응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택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일한다.그래서 각 사업의 그룹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메커니즘을 갖추면 독립한다.

우리 전통 가락을 새로운 음악과 접목하는 퓨전 그룹 ‘달이’로 ‘이음’은 예술의 일상화를 꿈꿔왔다. 이제 ‘달이’는 ‘이음’의 품을 떠나 독립했다. 앞서 ‘이음’의 뿌리라고 했던 ‘공공 작업소 심심’도 ‘이음’에서 독립했다. 사회적 기업이 아니었던 ‘이음’이 사회적 기업으로 변모를 꾀한 것도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서다. 계 모임 성격보다는 조금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싶었고, 회원이 운영하기보다는 공공시장의 영역에 들고 싶었다.

‘우리가 살고 싶은 환경’. 김병수 대표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돈이나 구조적인 문제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개성 있는 삶이 존중받는 사회, 고되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적당히 해도 가능한 사회, 변화 폭이 큰 일에 도전하는 것이 환영받는 사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 성차별 없는 사회, 관용이 많은 사회, 어려운 사람을 어렵게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는 사회’이다. 길고 거창해 보이지만 지금보다 따뜻한 사회라는 큰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음’이 벌이는 일들은 장기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이음’이 만드는 일은 성과를 확연히 드러내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순기능을 가진다. 언뜻 보아 실패한 듯한 프로젝트도 하나의 신호로서 의미 있다. 그 흔적이 알게 모르게 사회를 바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음’이 벌이는 일의 부가가치를 선뜻 계량할 수 없다.

‘이음’은 활동 무대를 전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곳 어딘가에서도‘이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보내 보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작은 관심이면 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