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봉사하는 ‘그루터기’ 회원들
청주 중앙공원의 노인들 위해 5년째 의료봉사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한 노인들의 쉼터인 청주 중앙공원에서 5년이 넘게 숨어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온 사람들이 있어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 주고 있다.
30∼40대의 의사와 약사,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그루터기(회장 석준)’라는 모임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루터기’는 지난 99년 12월 창립, 밀레니엄 첫해인 2000년 1월부터 지금까지 5년간 매달 셋째 주 일요일 함께 모여 중앙공원을 찾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빠진 적이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 찾아가
진료는 주로 내과 전문의이자 현 회장인 석준 원장(석내과, 도청앞 소재)이 도맡아 하고 있고 투약은 김현작(조선약국), 이상우(새청주약국)회원이 각각 분담해 일회에 250∼300명의 노인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루터기’ 회원들은 지체장애자들의 보호시설인 미평 베데스다의 집과 청원군 척산면 소재에 위치한 노인보호시설인 ‘즐거운 마을’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환자들의 무료진료와 함께 생필품을 전달하고 망가지거나 부서진 열악한 환경속의 시설을 보수해 주기도 한다.
정기행사 이외에도 소외된 이웃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불우한이웃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접수되는 데로 방문하여 의료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해 수해 때에는 트럭, 불도저까지 동원해 영동 수해지역을 방문, 의료봉사는 물론 복구 작업에도 전 회원들이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삽자루를 쥐고 구슬땀을 흘리며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그루터기’의 봉사 현장에는 현도정보고교 음악교사로 재직 중인 김상웅 회원이 학생들을 인솔하고 늘 참여해줘 큰 힘이 되고 있다.
몸바쳐 봉사할 수 있는 회원들로 구성
‘그루터기’의 최초 창립멤버는 현 회장인 석준 원장을 비롯하여 새청주약국의 정숙영(41)회원 등 신흥고교 동문 30여명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면서 한 때는 회원들이 40여명으로 늘었으나 지금은 의사, 약사, 교사,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진짜 몸 바쳐 봉사할 수 있는 25명의 알짜배기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재원은 일정액의 회비와 일부 찬조금 그리고 제약회사에서 의약품을 협찬 받고 있으나 그것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해 지난해부터는 일일호프집을 운영하는 방법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고형규(41) 총무(석내과 실장)는 “처음엔 중앙공원 노인들에게 매월 2회(둘째, 셋째 주 목요일)에 걸쳐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무료급식은 타 사회단체와 자주 중복되면서 커다란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회장님과 의논한 결과 병든 노인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봉사로 전환하게 됐다”고 한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석 회장은 그루터기의 본 목적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불우한 이웃과 노인들을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나마 나눌 수 있는 순수한 취지로 이 모임을 결성했기 때문에 그동안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한 채 원칙을 고수하여 왔다”면서 “모든 회원들이 그런 마음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지금까지 5년간 꾸준히 의료봉사 활동을 전개해 왔는데 자체부담 해야 하는 의약품 공급이 열악한 재원관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힌다.
또 회원 약국과 일부 제약회사에서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데다 그 방법은 장기적인 수급 책이 되지 못해 지금으로서는 그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석회장은 청주 출생으로 신흥고(1회)를 나와 지난 1990년 순천향의과대학을 졸업하고 95년 전문의자격을 취득했으며 그 후 대구동산병원에서 2년간 전임의 과정을 거쳐 부친인 석영관(전 충북의사협회 회장·79)옹의 대를 이어 지금의 석내과(청주 북문로1가 소재)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은 투석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밤 11시까지 병원에서 야간 근무해야 한다는 석 원장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집무실에 런닝머신과 함께 약간의 운동기구를 갖추어 놓고 틈틈이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깐씩 수면을 취하기 위해 침구까지 갖다 놓고 근무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 전문의다운 프로정신을 가지고 오늘도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취미는 클라리넷 연주이고 음악동호회인 ‘청주콘서트밴드’에서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단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연주회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회원의 자격기준, 평생봉사할 각오 있어야
한편 석 원장은 “‘그루터기’란 기본, 근본이란 뜻으로 늘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갈 수 있는 그런 각오로 명칭을 부여하였다.”면서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모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루터기’ 회원의 자격기준은 없으나 한 번 가입하면 평생봉사할 각오가 아니면 곤란하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석 원장은 “앞으로 소년 소녀가장을 돕는 일과 소외된 노인들의 진료활동 등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접근하고 싶고 노령인구에 대한 연구도 집중적으로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주어지면 네팔이나 아프리카 등 의료시설이 취약한 오지에 들어가 봉사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피력한다.
/ 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