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 서상교·최낙철·신기철 선정

2023-11-01     박동혁 기자

[충청뉴스 박동혁 기자] 독립기념관은 서상교, 최낙철, 신기철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이들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연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세 인물은 1930~40년대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교내에서 학생 항일비밀결사 태극단, 연구회, 상록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른 인물들이다.

오는 30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전시장에서 출옥 후 서상교의 사진, 신기철의 수형기록카드 등을 전시한다.

서상교는 1923년 11월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 1942년 5월 태극단을 조직했다. 결성 직후 1년여간 비밀리에 단원 모집 후 이듬해 4월 조직 재정비 과정에서 체육국장으로 선임됐다. 태극단을 이끌며 5월 9일 결단식을 개최하고, 전국적인 조직망 수립을 모색했다. 그러나 밀고로 1943년 5월 23일 단장이 붙잡히고 연이어 서상교를 포함한 단원 전원이 붙잡혔다. 서상교는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5년 이상 장기 7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최낙철은 1921년 11월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고 대구사범학교 5학년 재학 중 1941년 1월 연구회를 조직했다. 사범학교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14부를 편성한 연구회에서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을 맡았다. 최낙철은 졸업 후 함북 나진의 약초공립국민학교에 부임해 교사로 재직 중 대구사범학교의 항일비밀결사 활동이 적발되면서 일경에게 붙잡혔다.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그는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22년 1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신기철은 1937년 3월 상록회 결성 후 입회해 서적계 책임을 맡았다. 이어 신규 회원가입을 위해 활동하던 신기철은 같은 해 10월에는 회장직을 겸임했으며 학교에서 벌어지는 민족 차별대우를 논의하는 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8년 상록회의 활동이 드러나면서 관련자 137명이 대대적으로 체포됐고, 그 중 신기철을 포함한 36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신기철은 193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