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기획 인터뷰> 대전 문화를 말하다

“좋은 예술은 삶의 근본적인 반성을 끌어낸다”

2012-07-13     월간토마토 이용원

 

“좋은 예술은 삶의 근본적인 반성을 끌어낸다”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처럼 많이 오간적이 또 있을까 싶다. 문화가 우리 삶의 모든 산물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경제’에 우선할 날을 기대하기에 살짝 흥분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월간 토마토는 이번 호부터 <대전, 문화를 말하다>라는 특집 대담을 진행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을 만나 대전 문화 예술계에 관한 조금은 폭 넓은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대담자
김선건 대표 (대전산길잇기 대표,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대전문화연대 고문)
이용원 실장 (월간토마토 편집실장)

문화로 이루는 사회변화

|이용원 실장|
개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고 싶은데요. 흔히, 문화와 예술을 함께 사용하는데 이렇게 병치해 사용해도 될까요?
|김선건 대표|
문화 속에 예술이 포함되죠. 문화예술이라 그러면 좀 애매한데. 문화라는 것이 예술만이 아니거든요. 문화란 삶의 방식이 녹아있는 보다 넓은 개념이죠. 정확하게 쓰려면 문화예술이 아닌 문화라는 넓은 개념으로 쓰는 게 맞죠.
|이용원 실장|
보통 삶의 질과 연관해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데 요즘에는 특히 문화예술이 더 부각되고 있는 거 같아요. 교수님께서는 왜 그렇다고 보시나요?
|김선건 대표|
한 가지는 그동안 우리가 사회 변화 운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침체되어 있다는 겁니다. 시민운동이 나가지 못했죠. 문화는 시간이 걸리고, 쌓여서 의식을 바꾸는 겁니다. 단순히 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의식이 실천의 차원까지 깊숙이 내려가야되는데 아직까지 그러진 못했죠. 또 한 가지는 사회변화에 있어서 문화가 갖는 중요성이에요. 현실은 헤게모니를 통해 유지되기에 사회가 바뀌려면 그게 바뀌어야되죠. 그래서 주류문화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 담론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문화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거죠. 신자유주의 속에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보여주는 게 문화에요. 그런 의미에서 폭넓고 깊숙한 문화의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용원 실장|
조급해 할 순 없는 측면이네요. 사회변화를 꿈꾸거나 그런 측면에서 문화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그걸 수용하는 부분에서 사회변화를 바라거나 꿈꾸진 않는 거 같습니다.
|김선건 대표|
그렇죠. 그 수준까지는 못나가고, 단순히 예술을 향유하는 부분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좋은 영화나 소설은 삶의 근본적인 조건에서 반성을 하게 해요.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이지요.
|이용원 실장|
예술이 갖는 그런 힘때문에 문화와 그에 속한 예술을 병치해 사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문화를 말하다
|이용원 실장|
일반적으로 대전 문화예술은 고루하고, 더디고, 수준이 낮고, 불모지라는 표현을 쓰는데 교수님께서는 대전이 고향이시고, 오랫동안 사셨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대전 문화의 특징이나 그런 게 있을까요?
|김선건 대표|
대전은 서울이 가까워서 그런가 지역만의 독특한 색깔이라든지 지역적 기반이 취약해요. 지역에서 문화를 재생산해야 하는데 서울에 의존하고 있죠. 서울에 종속된 게 상당히 많아요. 다른 곳과 비교해보면 부산은 지역색이 있는데 대전은 서울이 가깝기 때문에 서울로 빠져버려요. 문화의 중심이 부족해요. 불모지까지라고는 얘기하진 않지만 열악한 건 사실이에요. 지차체의 마인드도 중요한데 대전은 문화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게 없다는 것도 문제에요. 그리고 예술생산자들도 과도하게 정치화됐죠. 시장이 누가 됐든 필요한 건 계속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죠. 문화연대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게 문화에 대한 제대로된 방향이나 정책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건물 짓는 하드웨어만 생각하지 내부에 필요한 정책을 세워서 추진하는 게 안 돼요. 문화재단도 만들어놓고 시에서 예산을 집행하는데, 그 많은 시민의 세금과 20명이나 되는 인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용원 실장|
대전 문화예술의 문제가 기반취약, 예술인의 정치화, 시의 정책 부재라는 말씀이군요. 대전 문화예술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에 대한 답답함이 있는데 기반이 취약하다는 걸 알지만 이를 위한 노력도 부족한 거 같은데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선건 대표|
문화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문화인과 시민이 참여해야 해요. 형식적인 들러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이걸 반영하는 구조가 돼야 해요.
|이용원 실장|
예술인의 반성도 필요한 거 같은데요. 예술인의 정치세력화는 문화발전을 가로막는 엄청난 문제라고 봅니다.
|김선건 대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술인 안에 비평가 그룹이 형성돼야 합니다. 미술이나 문학 등의 분야를 비평할 집단이 필요하죠. 지금은 워낙 예총 중심이고, 안 바뀌고 있어요. 기득권인 예총회관을 (공적자금을 들여)만든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멀쩡한 시민회관 부수는데 예술가를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안 됩니다.
|이용원 실장|
삼자 입장에서 보면 정책을 문화예술집단과 소통하려고 했을 때 다양한 의견을 가진 예술가 집단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아까 얘기했던 예술가 집단의 정치성도 이런 한계를 만들고요. 이런 상황을 깰 수 있는 논의를 시민영역에서 준비하는 것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
|김선건 대표|
맞습니다. 문화연대가 그런 매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계에 대한 아젠다를 만들고 정책을 논의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 내야죠. 토마토가 잡지 내는 역할도 하지만 전문가 그룹과 소통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키워서 노력해나가야 합니다.
|이용원 실장|
대구를 보면 대구는 원도심 활성화 사업으로 자료 조사하는 과정에서부터 젊은이를 참여시키고, 실무를 맡기면서 기획자를 키우는 작업을 해나간 것 같아요. 20대의 능력있고 열의도 있는 친구들이 문화 활동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틀을 선배들이 만들어 내야 하는데요. 약한 것 같아요. 영웅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특출난 사람만 믿고 그 사람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그런 것들이 안타까워요. 방법론적으로 찾기가 쉽지 않지만 어떻다고 보시나요?
|김선건 대표|
전문가들이 자주 만나서 그 부분을 논의를 하고 정리했으면 합니다. 대전은 문화도시가 되어야 해요.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그룹들을 이끌어내고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해요. 필요한 자원도 이끌어내고 문화기획자들을 키워야 하죠.
근데 대전은 새로운 인물 발굴해 내는 데 인색한 거 같아요. 인재에게 일을 주고, 발굴하고, 이게 참 약한 거 같습니다.
|김선건 대표|
요즘 인문학강좌가 유행인데 문화연대는 철저하게 유명한 사람 안 부릅니다. 지역사람을 끌어내서 키워야 하죠. 대전에 고학력 중산층 주부들이 많은데 그걸 좀 끌어내야 해요. 끌어내서 문화 쪽에 참여할 수 있게 말이죠. 제가 여러 번 노력했으나 한계가 있어요. 실용적인 이해관계를 못 벗어나죠.
|이용원 실장|
우선순위를 둔다면 대전문화발전을 위해 해결해
야할 게 뭐가 있을까요?
|김선건 대표|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문화인이 참여해서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바뀌어요. 이를테면 문화기술위원회가 있는데 분야별 전문가가 아니라 문화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것부터 제대로 돼야죠. 우선적으로 그런 걸 하면서 젊은 그룹을 만들어야 해요.
|이용원 실장|
아까 문화재단을 잠깐 언급하셨는데 문화재단을 만들 때 저는 대전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왕생긴 거 ‘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보는데요. 근데 지금은 바라는만큼 창조적이지 않습니다.
|김선건 대표|
시의 책임입니다. 제가 문화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 중 하나인데. 정치적으로 급하게 만든 면이 있지만 시로부터 독립, 전문성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단순한 대행업무밖에 안 하죠. 기금도 얼마 안 되고, 전문성도 없고, 직원들 처우도 열악하고, 업무도 일일이 시의 허가를 맡게 하고, 이사들은 거의 들러리만 서죠. 재단에서도 노력해야겠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시에 있어요.
|이용원 실장|
문화의 종속성 측면에서 대전만의 색이나 느낌, 냄새가 있다고 보시나요? 대전하면 떠오르는 차별성은 뭘까요?
|김선건 대표|
글쎄요. 그걸 뭐라고 규정하기가 어려운데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양반도시나 충절, 효로 억지스럽게 하기 보다는 우리가 만들어가야죠. 대전은 토박이가 25%밖에 안 돼요. 개방성이 높죠. 그런 게 섞인 게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없는 것을 만들기 보다는 신중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봅니다.
|이용원 실장|
‘대전을 문화도시로 만드는 게 맞다.’라고 하셨는데 과학도시는 연구단지가 있다는 게 근거라고 한다면 문화도시의 근거는 뭘까요?
|김선건 대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게 문화입니다. 대전 오면 다들 살기 좋다고 말해요. 대전에 빠진 것이 있다면 교육과 문화죠. 지역에서 생활에 중심이 지역이 돼야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서울에 있어요. 살기 좋다고 얘기하면서 다 서울로 가버리죠. 연구단지 이사회를 서울 가서 합니다. 대전에 살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을 가지고 참여해야하는데 따로 놀고 있어요. 지역성의 문제지만 연구단지와 원도심이 만나야 합니다. 서로 다른 걸 끌어내고 그런 얘기를 같이 해야 하는데 섞이질 않고 있어요. 지역에 뿌리를 둔 의미있는 생산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문화죠.
|이용원 실장|
도시공동체로서의 도시가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로서 하나의 생명을 가지는 게 그런 거겠죠. 원도심에 있는 문화를 경험한 사람은 좋아하는데, 접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네트워킹하고 묶어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 듯 합니다.
|김선건 대표|
앞으로 중요한 프로젝트가 과학과의 만남이에요.
|이용원 실장|
원도심활성화도 그런 측면에서 바탕에 가지고 있는 기본전제가 필요한데 빠져있는 듯 해요. 원도심활성화를 보면 이게 요즘 유행하는 포퓰리즘이 아닌가 싶어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압축해서 말하자면 어떤 걸까요?
|김선건 대표|
원도심이 갖고 있는 매력을 잘 유지하면서 그걸 통해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이 필요합니다. 그걸 문화를 통해서 하자는 겁니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좀 길게 보자는 거죠.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죠. 장소의 관성이라고 하는데 원도심을 떠나지 못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원도심만이 갖고 있는 매력, 작은 골목들, 오래된 건물, 오밀조밀한 분위기를 살리고, 그런 문화적인 축적들, 소프트웨어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음악회도 하고, 문화예술의 거리에 나와서 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말이죠. 문화속에 상업적 공간을 포함해 원도심의 매력을 잘 살려나가면 됩니다.
|이용원 실장|
충남도청 터 얘기로 넘어가면서, 시가 내세우는 것을 보면 얽히고 설킨 게 많아서 빨리 대안을 내놓으려고만 하는 거 같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장시간의 숙고와 논의가 필요한데 말이죠.
|김선건 대표|
도청터는 온전하게 확보해야 합니다. 시가 현실성도 없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데 우선 뒷길까지 해서 온전하게 터를 보전한 다음 필요한 공간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지 하나씩하나씩 하면 돼요. 도청터는 국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의지를 갖고 지켜야 합니다. 안 되면,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자체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이용원 실장|
원도심과 도청, 선화동 지역과 예술의 전당, 만년동을 제외한 대전 나머지를 보면 참 심심한 도시라는 느낌인데요. 소외된 느낌도 들고요. 다른 여타지역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지요?
|김선건 대표|
아파트 좀 안 지었으면 좋겠어요. 도안지구, 학하지구 하면서 개발하는데 좀 내버려 뒀으면 합니다. 도시디자인에는 공간에 대한 계획이 필요한데 부족한 거 같아요. 자본의 논리에 맞설 대책이 필요해요. 아무리 현실은 그렇게 흘러간다고 해도 말이죠.
|이용원 실장|
얘기를 마무리하면서 20~30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김선건 대표|
젊은 친구들 보면 어떤 의미에서 불쌍해요. 대학생활을 즐기지도 못하고, 스펙 쌓기에 열중하죠.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예요. 일자리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자신의 스펙만 탓하죠.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말고 의미 있는 삶과 가치를 살자.’라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쉽진 않지만 일자리가 없다면 지역에 애정을 가지고 젊다는 용기와 패기를 가지고 뭔가 새롭고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