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생활이 끝났을 때
이인상 변호사
주부 김씨는 10년전 직장생활을 할 때 회사 상사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사귀게 되었는데 사귀면서 남편이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남편의 처는 혼인신고를 하고 1남 1녀의 자식을 낳아 기르다가 가출하여 행방불명된 상태였고 2년 가까이 연락이 두절된 채 귀가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남편은 김씨에게 6개월 이내에 처와의 혼인관계를 정리하고 김씨와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하면서 같이 살자고 하여 김씨는 그 말만 믿고 남편과 전처 자식들과 함께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약속과 달리 동거생활을 계속 하면서도 전처와의 호적관계를 정리해 주지 아니하여 김씨도 남편과의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2년 전부터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낌새가 보이더니 이를 따지는 김씨에게 그 여자와의 동침관계를 공공연히 밝히면서 폭행하기에 이르렀고, "너는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다. 왜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느냐. 꼴보기 싫다"는 등 구박을 일삼고 있다.
김씨는 더 이상 남편과의 동거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낚시를 떠나고 없는 사이에 남편의 예금통장에서 200만원을 인출해 가출했다. 그리고 남편이 그 여자와 심야시간에 여관에서 나오는 현장을 촬영해 이를 증거로 그동안 동거생활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사실혼해소에 따른 손해배상(위자료)과 재산분할을 청구하려 한다. 어떻게 될까?
남녀가 사실상 부부로서 실질적으로 혼인(동거)생활을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법률상 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부관계를 사실혼이라 한다. 사실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 사이에 사실상 혼인의사의 합치, 즉 사회·실질적으로 부부가 되려는 합의가 있어야 하며, 부부공동생활이라고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실혼을 법률혼에 준하여 보호하고 있다. 즉, 사실혼 부부 사이에도 동거·부양·협조의무와 정조의무가 있고, 일상적인 가사문제에 대한 대리권이 인정되며, 사회보장을 위한 각종 연금관련법에 의하여 사실혼 배우자도 연금수령권자가 되고, 배우자 일방에 대한 제3자의 불법행위가 있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는 호적변동, 친족관계는 생기지 아니하며 서로간에 상속권도 없다.
또 사실혼관계가 해소되었을 때 즉,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헤어질 때 배우자 일방은 사실혼 파기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재산분할 청구도 가능하다.
그런데 위와 같이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에 준하여 보호를 받는 사실혼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실혼은 사회적으로 정당한 혼인인데 혼인신고만 누락·결여된 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법률상 혼인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제2의 여자(남자)와 동거생활을 하는 경우, 일정기간 또는 일정 목적만을 위해 계약상 부부로 행세하기 위한 동거, 무효 혼인에 해당하는 근친간의 사실혼 등은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사례에서, 주부 김씨의 동거생활은 겉으로 보기에 사실혼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남편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혼인신고를 해주지도 않은 채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하면서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니 집을 나가라는 취지의 폭언과 구박을 일삼아 사실혼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 동거생활을 시작하여 파탄에 이를 때까지 여전히 남편과 가출한 처 사이의 법률상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태에서의 동거생활 즉 사실혼관계는 법률상 보호받을 수 있는 적법한 사실혼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김씨의 남편에 대한 사실혼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나 재산분할청구는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례도 혼인신고를 한 부부의 어느 한 쪽이 집을 나가 장기간 돌아오지 아니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부의 다른 한
쪽이 제3자와 혼인의 의사로 실질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여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