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용계의 점령군 대전에 오다

보리스 에이프만 현대발레

2006-05-18     홍세희 기자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은 당시 억압된 사회 안에서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였고, 그의 음악은 고통과 울분으로 가득찬 고백이었다.”     - 보리스 에이프만

   
세계 무용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보리스 에이프만 현대발레단이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 상륙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붉은 지젤> 등 러시아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세계 무용계에 충격을 던지며 등장한 ‘보리스 에이프만(Boris Eifman)’은 뉴욕 타임즈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늘날 가장 성공한 러시아 안무갗로 손꼽히며 격찬을 받아왔다. 

이번 25일(목) 공연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차이코프스키-미스터리한 삶과 죽음>을, 26일(금)에는 마릴린 먼로 주연의 코믹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스토리에 담아낸 20세기 러시아 예술가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 2003년 신작 <Who's Who>를 선보인다.

이 두 작품은 보리스 에이프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에 관객들을 빨아들일 것이다.

세계무용계를 매료시킨 보리스 에이프만의 무대. 기대해도 좋을듯 하다.

일시 : 5월 25일(목) ~ 26일(금) / 오후 4시, 7시 아트홀
주최 :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등급 : 8세 이상(초등학생 이상)
시간 : 약 90분
입장 :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문의 : 042-610-2222,
www.djac.or.kr

25일(목) 공연 미리보기
차이코프스키 - 미스터리한 삶과 죽음
Tchaikovsky “The Mystery of Life and Death” (1993)

“끊임없는 창작의 압박과 고뇌, 그리고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동성연애자로서의 욕망”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내면적 갈등이 그와 분신간의 대립을 통해 긴장감 넘치게 표출된 작품. 러시아 최고 권위의 예술상인 '골든 마스크(Golden Mask)'상 수상작이자, 보리스 에이프만의 대표작.

동성연애자이자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한 남성으로서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욕망과 사회윤리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괴로워했다. 에이프만은 이러한 그의 내적 갈등을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분신의 등장으로 표현해 낸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환상 속의 분신과, 그의 감성적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의 아내는 항상 그를 괴롭힌다. 여기에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불문율로 되어 있는 동성애에 대해 공포적인 사회에서 생활해야 하는 압박감까지 더해져, 마침내 53세의 천재 작곡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작품이 초연되던 날, 극장 밖에는 흥분한 관중들이 모여서 '우리의 천재에게서 손을 떼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관중들은 에이프만이 차이코프스키를 모욕한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돌과 달걀, 그리고 토마토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에이프만을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꼽히는 그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 무용팬들이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다.

시놉시스
<1막>
위대한 작곡가가 그의 삶을 끝내려 하고 있다. 삶이 종말이 다가오는 순간 살아오는 내내 그를 괴롭게 했던 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그의 곁에 있는 친구와 친척들은 그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려고 그를 격려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운명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비속에서 쓸쓸하게 서있는 고독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바로니스 폰 멕 남작부인이 다가와 걱정과 염려에 가득찬 시선으로 우산을 씌워준다. 그녀의 친절함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안식처이다. 환각 속에서 살고 있는 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밀유코바'라는 여인을 알게 된다. 차이코프스키는 극도의 집중이 계속되자 신경쇠약에 가까운 증세를 나타낸다. '흑조'로 상징되는 검은 상념은 그의 마음을 황폐화시킨다. 오로지 <백조의 호수> 같은 창조적인 음악작업만이 평화와 조화를 찾고자 갈망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영혼에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은밀한 감정, 즉 동성애의 사랑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 밀유코바는 그를 다시 한번 음악작업의 세계로 무자비하게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언제나 그의 곁에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운명이자 분신, 다면적인 특성을 가진 그 사람은 잔인하게 그의 내적 고통을 폭로한다. 천사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이 분신은 작곡가의 영혼에 고통과 행복 모두를 보여준다.

환각 속에서 열정이 회오리치는 가운데 '흑조'가 '백조'를 몰아낸다. 쥐처럼 생긴 얼굴들이 가깝게 지내던 여성들과 겹쳐 나타난다. 혼란 속에서도 작곡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창조물인 왕자를 지켜낸다. 그는 동성애적인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곡가의 열정으로 만들어낸 왕자도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향해 떠나고 작곡가는 또 다시 독백과 함께 현실 속에 남겨진다. 미치기 바로 직전에 있는 그를 구한 것은 폰 멕 남작부인의 편지이다.

편지는 그를 다시 일에 몰두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그의 재능은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타인과의 조화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짧고 덧없다. 밀유코바의 불만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당시 금기시되고 경멸받는 동성애의 유혹에서 등을 돌려야만 한다는 고통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 자아를 버리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 고문과도 같은 것이며 오직 죽음만이 그를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 받고자 하는 의지력조차 없었다. 그를 구해낸 것이 폰 멕 남작부인의 손길이었는지, 그 자신의 작품 창작에의 의지였는지 모르나, 그는 다시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결심하게 되고,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그는 더욱 가혹한 나날로 접어들게 된다. 그는 결국 밀유코바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혼례식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그의 육체를 옭아매고 마음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2막>
다시 음악은 연주된다. 남녀 한 쌍이 춤을 춘다. 만남과 이별, 정욕과 열정. 사람들에게는 제 각각의 인생과 운명이 있다. 폰 멕 남작부인은 차이코프스키를 신처럼 받들며 그를 후원하고, 이렇게 천재 예술가의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 행복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고독으로 괴로워한다. 또한 부인의 그러한 숭배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 지옥과 같은 괴로움이 되기도 한다. 인생과 창작과의 영원한 대립. 창작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이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융합할 수 없다. 아름다운 남자에게 끌리는 그의 동성애적인 욕망은 시대의 윤리와 대치하고, 그러한 욕망을 느낀다는 것과 욕망이 발각되는 것 모두를 참을 수가 없다. 그는 <백조의 호수>의 왕자와 같이 여성의 품으로 돌아간다. 고독이야말로 그의 운명, 폰 멕 남작부인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은 차이코프스키에게 현실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부자의 변덕에 의존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가. 시혜에는 항상 대가가 주어지는 법!

사랑에 굶주린 불행한 부인 밀유코바는 이제 거의 미쳐서 비열한 욕망의 노예가 된다. 차이코프스키를 환각과도 같은 세상으로 인도할 매력 넘치는 도박판. 도박은 부를 낳기도 하지만, 인간을 한 순간에 파멸시키기도 한다. 세상은 도박판의 크기로 축소된다. 모든 것을 잊는 순간. 그러나 승리의 바퀴는 회전해 갈뿐.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스페이드의 여왕이다. 편지를 통한 대화도 끊어졌다. 폰 멕 남작부인에게 보내는 고백의 편지. 그의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한 팩의 카드들처럼 낱낱이 떨어진다. 구원은 곧 죽음이다! 영원을 향한 전진!

 

5월 26일(금) 공연
Who's Who (2003)

2003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예술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한 알렉스와 맥스라는 2명의 러시아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스토리를 마를린 먼로 주연의 코믹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차용하고, 배경, 음악, 춤 등 모든 면에서 1920년대의 미국의 모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기존 에이프만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경향을 보여준다.

듀크 엘링턴 등의 익숙한 재즈 넘버들, 루이스 프리마의 'Sing, Sing, Sing' 등의 흥겨운 스윙 음악들에 맞춰, 1920년대 뉴욕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쇼 걸, 나이트클럽, 탭 댄스, 서커스 등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이에 '발레 뮤지컬'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에이프만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고전발레뿐 아니라 재즈댄스, 탭 댄스, 모던댄스, 포크댄스, 광대극과 판토마임, 아크로바틱 등 20세기 유행한 모든 종류의 춤을 선보이며 춤의 향연을 벌인다. 주로 천재 예술가의 정신적 고뇌, 문학이나 철학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품에 담아왔던 에이프만의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이어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조지 발란신을 비롯한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 발레의 역사를 새로 썼던 선배 러시아 예술가들을 위한 찬가이자, 에이프만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러시아 다음으로 그의 공연이 가장 자주 공연되는 뉴욕(미국)에게 선사하는 선물과 같은 작품이다.

시놉시스
러시아 왕립 극장의 주역 발레리노였던 알렉스와 맥스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다. 거대한 이민자들의 무리에 섞여 첫 발을 내딘, 꿈의 나라, 미국.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설상가상으로 갱단원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까지 된다. 결국 갱단을 피해 들어간 한 나이트 클럽에서 여성 무용수로 변장한 채 살아간다. 가벼운 희가극, 나이트클럽의 댄스, 헐리우드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이들의 원대한 꿈과 희망은 사라지고, 미국식 쇼 비즈니스의 혐오스런 이면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줄 것 같았던 신세계에서는 그들이 발붙일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절망감과 향수병에 휩싸인다.

이 후 이 둘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절망에 빠진 맥스는 미국을 떠나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간다. 반면, 나이트클럽의 수석 여성 무용수인 '린'을 사랑하게 된 알렉스는, 그녀에게 자신이 본래 남성이며 러시아의 발레리노였다는 사실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게 된다. 화려한 색깔의 의상을 입은 그의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인사하면서 막은 내린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