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의 월요이야기] ‘반지의 제왕-귀게스의 반지(Gygis annulus)’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귀게스의 반지(Gygis annulus). 라틴어의 이 말을 처음 들어보는 분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Lord of ring)’이라는 영화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귀게스의 반지’는 바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반지로, 영화 속의 골룸이 동굴 속에서 발견했던 죽은 거인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입니다.
이 반지는 누구든지 목숨을 바쳐서라도 갖기를 원하는 반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반지를 끼면 누구든지 투명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매력있습니까?
이 반지를 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해도 들키는 법이 없을 테니까. 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탐나는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귀게스의 반지’일까요?
2300여년 전 플라톤의 ‘국가(The Republic)’라는 명저 속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
귀게스는 어느 양치기의 이름이었습니다. ‘국가’ 제2권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귀게스는 옛날 리디아 왕국의 양치기였다. 어느 날 큰 뇌우와 지진이 있고, 땅이 갈라져서 머물던 곳에 큰 틈이 생겼다. 그는 그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다. 그 말속에 몸집이 큰 남자의 시체가 있었는데 손에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귀게스는 그 반지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반지가 투명인간 반지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말했습니다.
“어떤 정직한 사람도 그 반지를 멀리하고 손을 대지 않을 만큼 단호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귀게스의 반지는 이처럼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 ‘귀게스의 반지’를 ‘몰래보기’와 ‘몰래하기’를 할 수 있는 힘이라 보았습니다. 이 참을 수 없이 끌리는 유혹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곧 ‘귀게스의 반지(Gygis annulus)’라는 라틴어 격언이 생겼습니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라틴어 격언집 <아다기아(Adagia)>에서, ‘이 말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풀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귀게스의 반지’. 그것은 ‘절대권력’이었던 것입니다. 권력자라는 것은 바로 귀게스의 반지를 끼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반지를 끼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어떤 불의한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반지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불의한짓도 하게 마련이겠지요.
착하기만 했던 양치기 귀게스는 반지를 얻고 나서, 엄두도 못 냈을 왕비의 알몸을 훔쳐보고 결국 왕비와 함께 왕을 죽여 왕국을 장악합니다.
이 이야기는 신화요, 판타지 소설입니다만, 현대에 와서 이 ‘귀게스의 반지’는 없어졌을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성능이 좋은 반지가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를 숨기고 상대방의 정보를 파악하는 정보기관의 정보력, 바로 해킹 기술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 트롤 부대’라는 사이버 여론조작을 하는 조직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해킹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로버트 뮬러 특검팀까지 꾸려졌지만, 특검팀은 끝내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논란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미국의 위싱턴 포스트지는 그해 11월에 치러질 미 대선에 “중국의 200만명 규모의 댓글부대 ‘5마오군’이 여론조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현재도 미국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부정선거 시비의 중심에는 사이버 해킹이 들어앉아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과학자와 군부 지도자들을 핀셋폭격으로 제거한 기술도 AI를 이용한 해킹이었습니다.
이제 해킹은 불법을 떠나, 전제가 되어버린 전략 기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귀게스의 반지’는 이제 과거의 신화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의 귀게스의 반지가 더 뛰어날까의 경쟁을 전 세계가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 세종시에서 바로 이 해킹을 방지하는 대학생 화이트 해커들의 경진대회가 열렸습니다.
제4회 ‘2025 핵테온 세종’ 대회입니다. 금년의 사이버 보안 컨퍼런스에는 국내외 5천여 명이 참여했고, 대학생 경진대회에는 32개국 180개 대학에서 1,606명이 참여했습니다.
세종시 핵테온 대회는 해가 갈수록 열기가 더해가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본선에 진출한 40개 팀의 치열한 경쟁 끝에 고급부문에는 한국 숭실대학의 ‘ASCii’ 팀이, 초급부문에는 대만의 ‘Starburst Kiwawa’팀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세계적인 IT강국 한국의 온갖 국가정보가 밀집되어 있는 행정수도 우리 세종시는 ‘귀게스의 반지’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전국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핵테온 세종’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올해 과기정통부로부터 5년간 국비 100억 원이 지원되는 ‘정보보호 클러스터 사업’을 치열한 경쟁 끝에 획득했습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귀게스의 반지’는 인류의 역사를 망라하여 자신과 종족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갖고 싶은 마력을 가진 반지라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핵테온 세종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직원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