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독성서원 배향인물에 대한 학술대회 개최, 삶의 행태 조명

독성서원 배향인물인 풍천임씨 4인(임홍망, 임창, 임징하, 임헌회) 삶과 학문세계 탐구

2025-08-22     유규상 기자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토정관과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는 22일 독성서원 배향인물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과 정신적 뿌리를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술대회는 김종욱 토정관장, 박동성 순천향대학교 아산학 연구소장, 지역 향토사학자, 유림과 향교 관계자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개 분야에 대한 주제발표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독성서원은 아산지역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본래 풍천임씨 집안의 충정공 임창과 충헌공 임징하를 배향하기 위하여 조선 철종 9년(1858년)에 독성서사를 세워 해마다 제향을 받들어 오다가 만 10년 되던 해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헐려진 것을 2004년 4월 30일 복설한 서원이다. 이때 효정공 임홍망, 문경공 임헌회 두분을 추배하여 4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2006년 3월 7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김종욱 토정관장은 개회사에서 "오늘 학술대회는 단순히 옛것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다가올 미래사회을 준비하고, 선현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후세들이 이정표로 삼을 수 있도록 기틀을 다져 나가자"고 제안했다. 

박동성 순천향대힉교 아산학연구소장은 환영사에서 "아산학연구소에서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원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지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면서, "오늘 발표되는 독성서원 배향인물중 서재 임정하 선생을 비롯한 4분들은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물을 토대로 지역에서 선양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학술대회 개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첫번째 주제 발표자인 전 호서대학교 김일환 교수는 임홍망의 사환과 정치활동과 관련하여 "죽실 임홍망은 당쟁이 극심했던 조선 인조대에서 숙종대를 살다간 아산의 대표적인 양반사족가문 출신으로 그의 지역적 배경이나 가문적 위상은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서인세력과 돈독하게 연결되었고, 노소분당이후에는 노론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어서 임홍망의 삶은 정치적 격변이 발생할때마다 서인과 부침을 함께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서인의 주류였지만 서인의 핵심세력은 아니었던 이홍망의 삶을 통해서 17-18세기 아산지역의 양반사족들이 어떤 생활을 영위했는지를 살필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주제 발표자인 충남대학교 이근호 교수는 "임홍망의 조카 임창의 신사소와 정치적 신원과정과 관련한 발표에서 1702년 이른바 신사소라는 상소를 올리는데 인현왕후가 죽는 과정에서 무고옥으로 불리는 1701년 옥사가 수습되고 희빈장씨가 자진한 뒤에 종묘에 고하자(고묘론)는 문제를 국시로 정하자고 주장하였다. 상소는 당시 세력간에는 논쟁이 있었고 유배가 결정되었다가 아들의 상소로 풀려 났다. 경종 즉위 이후 임창은 소론 정국하에서 역적이자 흉적으로 처형되었다가 영조즉위 이후에는 을사환국을 통하여 증직과 증시 등 신원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세번째 주제 발표자인 송기섭 한가람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재 임징하의 삶과 활동과 관련해서, "임징하는 조선후기 당쟁사에서 노론의 의론을 대변하다가 그 소용돌이에 휩싸여 비극적인 생을 마친 사람으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 그의 삶은 성인관리로서의 활동과 유배지에서의 삶과 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네번쨰 주제 발표자인 박학래 군산대 교수는 전재 임헌회의 학문활동과 성리설과 관련해서 "전재는 19세기 중반이후 낙론학맥을 기반으로 학문적 영향력을 확대강화한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당시 활동한 이항로, 기정진 등이 특정한 사승관계에 기반하지 않고 독자적인 학문연찬을 통해 성리설을 제기하며, 학문적 영향력을 확대 강화하였다면, 임헌회는 김창협에게서 비롯한 낙론의 중심 학맥을 이은 홍직필의 학통을 계승하여 당대 율곡학맥 내부의 중심학자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다섯번째 주제 발표자인 변종현 경남대 명예교수는 고산 임헌회의 한시에 나타난 삶의 지향과 내용적 특징과 관련해서, "고산은 산림에 거처하면서 산속생활에 만족해 했고, 독서에 열중하여 외롭고도 높은 품격을 가진 삶의 태도를 지향하였다. 그가 지은 영물시는 자신의 삶을 투영하기도 하고 인간의 삶의 행태를 풍자하기도 하였으며,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고 할 정도로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 종합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박동성 아산학연구소장은 "독성서원 배향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물이 만족스럽다"며 성과를 치하하면서도 "지역사회에서 그 분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후속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심층연구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종합토론에는 홍제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문광균 충남역사문화원 연구위원, 구사회 선문대 명예교수, 유지웅 전북대 교수, 김윤수 지리산 문학관장이 참여했다.

종합토론에서 제기된 의견들로는 "독성서원은 송시열의 영향이 아산지역까지 확산되어 서인 노론계의 성격이 투영되어 있으며, 당대에 있어 스승인 홍직필의 영향력과 결합하여 19세기 중반 낙론계의 종장으로서 임헌회 선생의 학문적 영향력은 컸으며, 그 증거로는 호서, 호남, 영남지역의 인물들이 그의 문하에 다수 입문한것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비중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문인록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다"는 등의 다양한 논의가 개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