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초예술, 청소년과 미래를 잇는 지역문화의 토대(성원선 전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문화의 성장은 단순히 산업적 성과나 흥행 지표로만 설명될 수 없다. 오늘의 K-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역시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여온 기초예술의 힘 덕분이다. 미술, 음악, 무용, 연극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익혀온 표현의 언어이자 삶의 토대였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며 무대에 서는 작은 순간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몰입과 도전, 성취의 경험을 통해 창의성을 길러내는 밑거름이 되어왔다. 따라서 미래의 문화융성을 준비한다면 무엇보다 기초예술의 기반을 지역에서부터 단단히 다져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교통망이나 산업 단지 같은 인프라를 떠올린다. 그러나 지역문화 발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프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기초예술을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지역마다 미술, 음악, 무용, 연극을 배우고 실험하며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고, 이를 꾸준히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과 문화시설은 단순히 공연장을 빌려주는 역할에 그치지 말고, 청소년과 시민들이 기초예술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창작과 실험의 장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지원센터가 기초예술과 창의교육을 적극적으로 품어야 한다. 현재의 프로그램들이 일회성 체험이나 진로탐색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앞으로는 전문 원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심화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작가의 작업실을 열어 아이들이 실제 창작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 소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상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청소년들은 예술을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에서 접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공동체적 감각을 배우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아직은 설립되지 않은 아동예술교육센터와 같은 기반 시설은 새로 확충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일상 기반의 복합공간은 기초예술을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만든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전시와 공연, 체험 활동은 아이들이 스스로 예술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다. 동시에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연극 무대를 꾸미며, 음악을 연주하는 경험은 단순히 문화 활동을 넘어서 가족 간의 소통을 풍부하게 한다. 창의적 활동 속에서 가족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공동체적 유대의 장으로 다시 자리 잡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이 가진 인적 자원이다. 각 지역에는 묵묵히 창작을 이어온 미술가, 음악가, 무용가, 연극인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지역의 소중한 교육 자산이기도 하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 예술적 태도는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배움의 교과서가 된다. 따라서 지자체와 문화기관은 지역 예술가들이 교육 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예술의 힘을 공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충청남도의 경우만 보더라도 30여 개 대학이 있고, 이 가운데 예술대학이나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를 둔 곳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학 교육만으로는 지역 전체의 기초예술 기반을 튼튼히 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의 인프라와 인력을 청소년 교육,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연계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열린 예술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지역문화진흥의 열쇠는 화려한 축제나 대형 공연에 있지 않다. 작은 작업실, 소극장, 동네인프라는 지역마다 있는 도서관과 같은 곳을 기초예술의 실험실로 전환이 필요. 미술관.공연장에서 열리는 기초예술 교육 프로그램, 가족이 함께하는 아동예술교육 활동, 그리고 지역 예술가와 청소년이 만나는 현장이 바로 우리 문화의 미래를 만든다. 기초예술은 청소년을 키우고, 가족을 묶고, 지역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힘이 곳곳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기초예술의 토양을 세심하게 가꾸는 일이다.
성원선 (문화예술기획자. 전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