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용 칼럼] 판단의 오류

2025-09-25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한 부인이 비행기의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있는 동안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문민용

그 여인은 자리에 앉기 전의 맞이방에 있는 간식 파는 상점에서 비행기에 탄 뒤에 먹으려고 한 봉지의 쿠키를 샀습니다.

신문을 읽으며 옆눈질을 해보니 자기 곁에 앉아있는 신사가 그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내려다보자 그녀가 산 쿠키 봉지가 열려서 그 신사가 그것을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그 신사가 남의 쿠키를 먹을 만치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자기의 쿠키를 그 사람에게 다 빼앗길 수가 없어서 봉지에 손을 넣어 자기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신사가 계속해서 쿠키를 갖다 먹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욱 안달이 나서 부인의 봉지 속의 쿠키를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한 주먹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때 옆에 앉은 신사는 손을 넣어 마지막 쿠키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먹기 전에 하나를 반으로 쪼개어 그 반 조각은 남겨 놓고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자 이 부인은 더욱 화가 나서 반 조각이 남아 있는 빈 봉지를 낚아채서 그녀의 가방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가방 속에 열지 않은 쿠키 봉지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강도의 이야기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란 이름은 ‘늘리는 자’란 뜻입니다.

그는 앗티카라는 지방에 살면서 자기 영지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쇠 침대 위에 누이고 결박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잡아 늘여 침대 길이에 맞추고, 반대로 길이가 침대보다 길면 긴 만큼 잘라버려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테세우스라는 영웅이 이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그가 여행자들에게 했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융통성이 없다는 뜻의 관용구가 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 마음속의 자를 가지고 남을 제멋대로 판단해서 내 마음에 안 맞으면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내 판단과 평가를 받는 사람은 몸이 제멋대로 늘려지거나 잘리게 됩니다. 상처를 입고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혹시 우리가 가진 자가, 우리의 판단이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남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상처 주고 죽이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요? 세종대왕 때에 청렴결백한 정치가로 유명했던 맹사성은 항상 허술한 옷차림 촌부의 모습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성묘차 온양을 다녀오는 길에 비를 만나 용인의 어느 여관에 들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는 영남에서 올라오는 호화로운 선비의 행차가 있었으므로 맹정승은 방을 얻지 못하고 낭하 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바둑을 좋아하는 선비의 요청으로 대청마루에 올라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서로가 신분을 알 수 없는 초면이므로 상대방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맹 촌부가 먼저 제의했습니다.

"우리 말할 때 묻는 말의 마지막에 공을 붙이고 대답 끝에는 당을 붙이기로 하자"고 하였더니 선비는 "서울로 간당"하고 대답했습니다.

관심이 생긴 맹 정승은 다시 묻기를 "무슨 벼슬이공?"하였더니 선비는 "녹사취재 벼슬이당"했습니다. 그래서 맹 정승은 "내가 힘써 줄공" 하였더니 선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네 같은 촌부는 택도 없는 소리당"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환담하다가 선비는 서울로 올라와 과연 녹사취재 벼슬을 얻게 되어 3정승 6판서가 모인 정청으로 신고차 방문을 했습니다. 6조 판서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선비를 본 맹정승은 "어찌 된 일인공?"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선비가 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금관조복의 좌의정이 바로 그 촌부였습니다. 전날, 촌부인 줄로만 알고 무례하게 대했던 선비는 정신이 산란해져서 말하기를, "죽을죄를 지었당"하고 맥없이 대답했습니다.

그 후 이 선비는 맹 정승의 지도로 청백한 관리가 되었다는 사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에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을 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