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의 월요이야기] 탈북민들의 추석

2025-09-30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탈북한 태영호 전)북한 영국공사는, 남한에 와서 첫 추석을 맞이했을 때, 남한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민족의 대이동을 하면서 고속도로 상황을 하루 종일 방송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최민호

북한에서는 추석에도 부모 친척을 뵈러 고향에 갈 수가 없다. 이동하기 위해서는 통행증이 필요한데, 추석은 통행 사유가 못되기 때문이다. 어서 통일이 와서 북한 사람도 추석 때 마음대로 고향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9월 26일 저녁 새롬동 가족센터에서 가진 탈북민들의 추석 잔치에서 한 말입니다.

지난달 저와 탈북민들과의 간담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습니다. 북한 탈북민들은 공개석상에서 자신들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담회를 가져도 자신들에게는 별 긍정적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생색내려고 간담회 등을 갖는데 정작 자신들이 필요한 것은 일할 시간과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가진 이야기 속에는 남한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19살 아들과 수년에 걸쳐 북한으로부터 탈출해서 중국에 수년간 체류하다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정착하자마자 병무청에서 아들에게 군 입대 영장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직 중국말밖에는 못하는데, 아무리 군 면제를 통사정해도 하는 수 없어 입대를 했답니다. 그
아들이 군에서 받았던 숱한 상처 이야기, 자신들은 다문화 가정도, 한국인도 아닌 존재라는 이야기, 북한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스피치 학원에 다녔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아주 공부를 잘하는데 학원 보내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 집에서 혼자 놀 때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 등등... 한이 없었습니다.

그중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명절 때면 한국 사람들은 다 어딘가 떠나거나 가족들을 만나는데 자신들은 갈 곳이 없어 추석 명절이 가장 외롭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추석과 탈북민들의 날인 7월 14일 만이라도 우리들끼리 만나 이야기 나누고, 조상님들께 술 한 잔 올리는 자리를 만들어 주실 수 없을까요? 시장님.”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1년에 두 번 탈북민들의 날과 추석 명절에는 탈북민들이 함께 모이는 잔치를 마련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런 애틋한 사연을 들은 분들이 뜻을 모아 자리를 마련한 것이 가족센터에서 가진 잔치였습니다.

탈북민들이 두부밥 등 북한 음식을 손수 만들기도 하고, 송편을 빚어 나누어 먹고 민족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도 가졌습니다.

사랑의 열매, 농협, 애터미 등에서 도시락과 선물 등을 푸짐하게 마련해 주었고, 고운동 마을 음악동아리의 이대규씨와 탈북 가수 전향진 씨의 노래, 그리고 북한 악기 소해금의 연주 등을 들려주었습니다.

탈북민 40여 명, 태영호 공사, 이북 도민회에서 오신 분들과 자원봉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모처럼 듣는 북한 노래에 박수치고 어깨춤 추며, 함께 노래하는 흥겹고도 가슴 따뜻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특히 ‘사단법인 이어짐’ 김홍중 대표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하는 탈북민 자녀들에게 유명 강사를 섭외하여 학습 지도 등의 교육봉사를 해주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성적이 좋다는 초등학생에게는 개인지도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행사 내내, 눈물도 메말라 나오지 않는다는 탈북민들이 눈물 글썽이며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연속하며 기뻐하는 모습에 정작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행사를 마련한 참석자들이었습니다.

하미용 센터장은 많은 행사를 해보았지만, 이번 행사처럼 따뜻하고 보람된 행사는 없다고 하더군요.

일가친척도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색한 남한 생활에 적응하며, 자신이 누구라고 떳떳이 밝히는 것도 꺼려지는 이 땅의 탈북민들은 참으로 비극적이고 특별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지노박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 이 땅에서 가장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이 누군지 알려주시면 그분들을 위해 공연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

“탈북민들 아니겠는가.” 라는 결론에 이르러 안성에 있는 탈북민 보호 시설 ‘하나원’을 찾아 그야말로 부둥켜안고 함께 웃고, 울며 노래하고 연주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성공하여 행복하면 할수록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픈 사람들. 

예전에는 소위 브로커들에게 1천만 원을 주면 어찌하든 탈북할 수 있었는데, 감시가 더 어려워져 지금은 브로커들에게 1억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태공사의 말에는 아연할 따름이었습니다.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하여 목숨을 걸고 오로지 자유와 행복한 삶을 찾아 북한에서 온 한 핏줄 한 민족, 탈북민 가족. 그분들을 위해 기꺼이 선물과 봉사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북한에서는 지켜주지 못한 여러분 탈북민들을 우리 대한민국 세종시에서는 지키고 보호해드리겠다고 약속하며 행사를 마쳤습니다.

행사가 끝나자, 저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자신의 핸드폰만으로 사진을 찍는 그분들을 보며 저는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