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산 근대문화유산 부활,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부터

2025-10-23     유규상 기자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는 대한민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아산의 미래에도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아산에는, 관광객은 물론 아산시민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적인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서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다. 온양민속박물관과 구정아트센터가 바로 그 유산이다.

잘 알다시피 온양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 1세대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 계몽사의 창업주 「구정 김원대 선생」이 1978년에 설립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이자 한강이남 최대 사립박물관인 온양민속박물관 본관은 우리나라 건축계의 거장 김중업·김수근 선생의 제자 김석철 선생이 30대 청년 시절 작품이고, 4년 뒤인 1982년 건축한 구정아트센터는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庾東龍)」이 설계한 첫 번째 한국 건축물이다.

김석철 건축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문화의 거장으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등이 대표작이고,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아시안건축상 금상,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상, 이탈리아 정부 국가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이타미 준은 어머니의 땅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며 늘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재일한국인으로서 서른 넘어서야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한다.

이타미 준은 구정아트센터에 대한민국의 정서와 우리 아산의 전통을 흠뻑 담아 되살렸다. 구정아트센터를 구상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골집의 흙벽돌에서 조형의 원점으로 반영했고, 풍부한 아산의 황토로 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재료로 사용했다 기록하고 있다. 터를 일구며 나온 돌과 주변 돌들로 돌담을 조성했고, 내부는 충청도 전통가옥구조인 ‘ㅁ자형’을 되살려 설계했다. 재원 조성상 규모의 한계는 있었지만, 건물 구조 자체는 아산이 사랑하고 아산에 잠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모습을 본떠 유선형의 거북선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구정아트센터가 우리 아산의 상징과 전통으로서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해준다.

2011년 작고한 부친 이타미 준과 함께 설계작업부터 참여했던 딸이자 건축가 「유이화」 씨(ITM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아버님의 건축세계가 갖는 세계적인 의미를 저서 『물·바람·바위의 건축가 이타미 준의 예술 철학』(이타미 준 저, 유이화 엮음, 마음산책, 2025)에 기록하고 있다.

2005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여하면서 “이타미 준은 현대 미술과 건축을 아우른, 국적을 떠나 세계적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는 찬사로 그의 건축세계에 세계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타미 준은 2006년 아시아 ‘문화환경상’, 2010년 일본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무라노도고상’도 수상했다. 대표적 건축작품으로 일본 ‘조각가의 아틀리에’, 한국 제주 ‘방주교회’ 등이 있고, 제주 한림읍의 유동룡미술관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는 명소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곧 세계의 정상들이 모이는 제32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고장 경주시에도 이타미 준 건축가의 한국사랑 혼(魂)이 담긴 황룡사구층탑 모티브의 경주타워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왔다. 경주타워는 대한민국의 건축을 대표하는 승효상 건축가의 ‘솔거미술관’, 이타미 준과 함께 세계적인 일본 구마 겐고 건축가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등과 함께 세계인의 발길을 모으는 명소이다.

이러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서 잠재력을 지닌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 바로 옆에 추진중인 아산예술의전당 건립 계획은, 아산의 전통과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적잖은 우려를 사고 있다. 이대로 건립 시, 구정아트홀의 경관 훼손은 물론 충무교 확장공사에 따른 공간 활용의 제한도 문제이고, 곡교천변 도로와 박물관 사거리 및 충무교 간의 늘어나는 교통량 및 주차 처리도 예술의 전당 건립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필자도 직·간접으로 아산시에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렇다 할 해결 방안을 듣지 못하였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아산의 자랑으로 세계인의 발길을 모으는 명소로 가꾸어야 할 온양민속박물관과 구정아트센터의 세계적인 건축사적 의미를 살려나가는 일이 바람직 할 것이다. 아산 예술의전당은 아산시민 모두의 숙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공공용지를 활용한 신정호 상류지역과도 같은 넓은 부지를 활용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지 않을까? 농어촌 공사와 충분한 협의 하에 약 5만여평의 부지를 확보한다면, 「예술의 전당」과 오랜 숙원 사업인 「어린이 공원」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자랑스런 문화유산 「온양행궁」은 안타깝게도 이미 복원에서 멀어져갔다. 양귀비, 클레오파트라 등의 온천문화유적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온천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살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 아닌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세종대왕과 한글준비, 맹사성과 장영실 등 이 소중한 역사적 인물·문화유적·유산들을 혹여 영원히 복원하지 못한다면,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후손·후배들에게 훗날 부끄러운 세대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근간에 아산의 현대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이어령문학관, 10년 넘도록 타당한 건립 계획조차 마련 못하는 윤보선 대통령 기념관, 또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의 상징 이종환 거리도 시간만 흐를 뿐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산을 사랑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아산 근대문화유산 부활, 이제 온양민속박물관과 구정아트센터로부터 새로운 전기를 찾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는 오늘의 아산에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타 지역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전통과 유산’을 끝내 외면한다면 아산에게 어떤 문화적 미래비전이 있겠는가!

이 명 수 /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