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 칼럼] 고교학점제② 논란과 한계, 무엇을 놓치고 있나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칼럼, 강미애 세종미래교육연구소 대표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고교학점제의 목표는 분명하다.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골라 듣고, 필요한 학점을 채워 졸업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맞는 배움”을 이루자는 것이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학교 현장을 살펴보면 세 가지 약한 고리가 반복해서 눈에 띈다.
가장 먼저 ‘교사 문제’다. 선택 과목이 늘면 과목을 열 수 있는지만 따질 게 아니라, 그 과목을 맡아 제대로 가르칠 교사가 있느냐가 핵심이 된다.
대도시 대형 학교는 그나마 인력이 돌지만, 소규모 학교나 농산어촌은 전공 교사 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 공동교육과정이나 원격 수업으로 메운다고 해도 시간표가 쪼개지고, 학생 이동 안전과 실험·실습 품질 같은 현실 과제가 남는다. 다양한 과목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수업의 질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평가에 대한 부담과 공정성이다. 학점제에서는 각 과목의 성취 기준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수행평가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과목 수가 많아질수록 과제와 프로젝트도 불어나 학생은 관리에 쫓기고, 교사는 피드백과 기록 업무로 지친다. 학교마다 기준이 달라 생기는 혼란, 과제 대행이나 표절, 생성형 AI 사용 기준 같은 별도 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평가가 배움을 돕는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평가가 배움을 밀어낸다”는 체감이 나오는 이유다.
세 번째는 AI 시대와의 맞물림이다. 앞으로의 일자리는 빠르게 바뀌고, 데이터 이해력과 AI 활용, 디지털 윤리 같은 기본 역량은 선택이 아니라 공통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과목 구조와 학교 인프라가 이 변화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짧고 깊게 배우는 모듈형 수업, 지역 대학·기업과 연결된 실제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가 넓고 고르게 깔려 있지 않다면, 결국 진로 정보와 기회는 또다시 격차를 만든다. 대학 입시와의 연결이 불분명하면 학생·학부모가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상도 되풀이될 수 있다.
물론 긍정적 신호도 있다. 일부 지역은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 과목을 늘려 학생의 선택지를 넓히고, 토의·탐구형 수업으로 수업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이수 학생을 위한 보충지도와 재이수 체계를 손보려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오래가게 만들고, 모든 학교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하려면 제도와 운영을 더 촘촘히 다듬어야 한다.
“선택의 확대”가 “혼란의 확대”로 번지지 않으려면 교사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필수 과목과 핵심 심화 과목이 꾸준히 열리도록 인력 배치를 현실화하고, 수행평가의 총량과 기준을 학교 간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맞추는 최소한의 선이 필요하다. 학생과 교사가 시간표·학점·보충지도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는 간편한 시스템 도입도 필수다.
끝으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택은 넓히되 그 선택의 품질을 지키는 책임은 결코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교사 배치와 평가 기준, 그리고 AI 시대의 공통 역량—이 세 가지를 최소 기준으로 단단히 세운다면, 고교학점제는 “무엇을 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제도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 ‘고교학점제 ③고교학점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 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