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 칼럼] 고교학점제③ 나아가야 할 방향—선택을 ‘경험의 사다리’로
-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칼럼, 강미애 세종미래교육연구소 대표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고교학점제의 목적은 단순히 ‘다른 과목을 많이 듣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춰 과목을 묶어 배우며, 배운 것을 실제 성취로 증명하도록 돕는 일이다.
전면 시행을 앞두고 각 시‧도는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학교를 확대해 선택 과목의 문을 넓히고 있지만, 이 흐름이 학생의 경험으로 이어지려면 제도 설계가 한 단계 더 정밀해져야 한다.
운영 안내서들이 제시하는 기준, 예컨대 어떤 과목을 온라인으로 개설하고, 미이수 학생을 어떻게 지원할지는 기본 틀을 제공하지만, 학교 규모와 지역 여건에 따라 체감 격차가 생기기 쉬운 만큼 현장에 맞춘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제는 교사 확보다. 선택 과목이 늘면 시간표가 복잡해지고, 과목을 맡을 전공 교사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다.
연구와 정책토론에서는 이미 교원 수급을 학급수 중심에서 ‘개설 과목·수업 시수’ 중심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되어 왔다.
순회·초빙·겸임 교사 같은 탄력 배치를 권역 거점학교와 묶어 운영하면 소규모 학교도 핵심 선택 과목을 꾸준히 열 수 있다. 이는 여러 시‧도에서 시범 운영된 공동교육과정 모델과도 흐름이 같다.
둘째 과제는 평가 방식의 개선이다. 학점제는 ‘이수’가 핵심이어서 수행평가의 비중이 커지는데, 과목 수가 늘수록 과제의 양도 불어난다.
해외 사례는 과제를 줄이고 피드백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 표준 루브릭과 예시작품 공개, 교사협의에 기반한 공정성 확보가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온라인학교·공동교육과정 안내에 평가 기준과 보충‧재이수 절차가 포함되기 시작했지만, 학교마다 들쭉날쭉한 기준을 줄이려면 ‘평가 총량 관리’와 ‘공통 기준’이 더 분명해야 한다.
셋째 과제는 AI 시대와의 맞물림이다. OECD ‘러닝 컴퍼스 2030’은 학생 주도성과 지식‧기능‧태도‧가치의 통합 역량을 강조한다.
우리 학점제가 이 방향을 실제 수업으로 끌어오려면, 데이터·AI 리터러시와 디지털 윤리 같은 공통 바탕을 분명히 하고, 그 위에 ‘기초–응용–실전’을 잇는 연계 트랙(Program of Study)을 깔아야 한다
. 예컨대 글쓰기·윤리를 바탕으로 데이터 리터러시와 미디어 분석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하거나, 수학 심화와 물리 실험을 거쳐 로봇·메이커 캡스톤으로 올라가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선택은 나열이 아니라 ‘경험의 사다리’가 되고, 생활기록부도 ‘듣기 목록’이 아니라 ‘성장 이야기’가 된다.
지역 격차를 줄이는 실마리로는 온‧오프 공동교육과정의 고도화가 꼽힌다.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수업과 지역 거점 스튜디오, 그리고 대학‧연구소‧기업과 연결된 프로젝트형 과목을 조합하면 소인수 과목이나 특화 실습도 정규 수업 안에 담을 수 있다.
진로 설계는 ‘연 1회 상담’으로는 부족하다. 담임‧진로교사‧과목교사가 함께 학기 초‧중‧말로 이어지는 상시 코칭을 운영하고, AI 기반 대시보드로 성취·흥미·과제 부담을 가시화하면 과부하 신호를 일찍 잡아 과목을 조정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시‧도가 학점제형 수강신청·이수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학사 운영의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관리 체계가 안정되면 ‘선택의 확대’가 ‘혼란의 확대’로 번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결국 방향은 분명하다. 교사 확보의 안정성, 평가의 질적 전환, AI 시대형 트랙 설계가 고교학점제를 ‘선택을 위한 선택’에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택’으로 바꾼다. 필자는 이렇게 본다.
선택은 넓히되, 그 품질을 지키는 책임은 가볍게 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기본선을 제대로 세울 때 학생의 하루가 바뀌고, 학교의 일 년이 달라진다.
세종미래교육연구소는 현장의 해법을 정책으로 잇는 브리지로서, 선택의 자유가 배움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학교를 함께 만들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