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의 월요이야기] "시대정신"

2025-11-11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그럴듯 하지만 진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흘러간 물과 같아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최민호

되풀이되는 것이 있다면 늘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풀이될 뿐입니다. 새로운 것이란 새로운 ‘시대정신과 기술’입니다. 시대정신과 기술에 맞춰나가는 나라는 흥하고, 뒤쳐지는 나라는 망한다는 역사의 진실만이 되풀이된다는 것입니다.

원시 수렵사회는 남성은 사냥을 하고 여성은 자녀를 돌보는 여성위주의 모계사회로, 그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을 것입니다.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하는 농경사회로 접어들며 약탈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농토와 노동력이 중요하다보니 땅을 빼앗는 전쟁이 일어나고,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하니 일부다처와 다산(多産)이 강조되었고, 당연히 근력이 강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선호되는 남존여비와 충효가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민족이 국토와 권력을 차지했으니 수많은 약소국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뼈아픈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만일 율곡선생의 주장대로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이 왜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왜군의 주력 무기는 조총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조총을 처음 접하였고, 조선은 1589년 일본 대마도주의 헌상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총을 바라보는 양국 지도자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일본의 장수는 ‘조총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신무기다’라고 생각하고, 개량을 거듭하며 대량생산하게 됩니다.

반면, 조선의 지도자들은 조총을 보자 ‘세상에 매우 위험한 물건이니 없애버려라’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이런 인식 속에서 설사 10만 군사를 길렀다 해도 활 가진 조선군이 조총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시대를 보는 지도자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현대는 산업사회입니다. 산업사회는 농경사회와는 전혀 다릅니다. 토지나 노동력이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기술과 자원, 그리고 에너지가 필수요소입니다. 

산업발전은 그 나라가 생산하는 전력의 양과 질에 정확히 비례합니다. 전력없는 산업사회의 발전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짓고, 댐을 만들어 물과 수력에너지를 얻으며, 원자력발전소에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현대의 전쟁은 대부분 에너지와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석유나 가스, 천연자원이 그것입니다.

우리 역시 수많은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였고, 댐을 막아 수력발전을 일으켰습니다. 전기를 확보하기 위해 전세계는 미래의 사활을 걸고 연구중입니다. 전기 배터리나 핵융합 발전기술 연구가 그것입니다.

에너지 생산에는 환경에 대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하여 에너지 생산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만일 탈원전·탈석탄을 주장하며 있는 기술조차 폐기하며 전기에너지 생산을 외면한다면, 조총이 위험하다 하여 없앰으로써 더 큰 재앙을 만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녀간 차별이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서열도 더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대정신의 착오’인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산업시대를 넘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래사회의 “시대정신”은 이러한 AI를 누가 이끌고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I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는 인재(人才)입니다. 얼마나 탁월한 인재가 AI 기술을 발전시키는가가 다음 시대의 흥망을 결정할 것이라 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AI 시대에는 “AI 기술을 지배하는 신과 같은 인간(Homo deus)”, “AI 기술에 복종하는 노예같은 인간” 그리고 “AI를 거부하는 지하의 인간”으로 나뉜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대에 시급히 이공대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각국이 인재영입 전쟁을 벌이고 수월성 교육(秀越性 敎育:우수한 인재 양성교육)으로 대전환하는 이유입니다.

전기와 물은 정보 저장고인 AI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가장 필수요소입니다. AI는 전기와 물을 먹는 하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확보를 위해 폐기했던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고, AI 산업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라는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물의 확보”에 미래의 진운을 걸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대정신”인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댐도 발전소도 건설에 반대하고, 흐르는 물을 가두어 두는 보(湺)조차 해체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청년들, 특히 이공계 출신 인재들의 70%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의대를 희망하는 고등학생의 비율이 이공계나 기초과학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왜 이럴까요? 정말 왜 이럴까요?

“시대정신”의 부재입니다. 정부나 지도자가 “시대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조총을 보고도 없애버리고, 왜적이 쳐들어올 때도 ‘그럴 리 없다’며 애써 외면하던 과거의 역사 속으로 침몰될 것입니다.

“시대정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정책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것은, 겨울이 깊어가는데 여름옷을 입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시대착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