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용 칼럼] 인생의 허무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을 지나가다가 포도가 익어서 주렁주렁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는 높게 쳐져 있었고 그 틈새는 촘촘해 머리는 들어가는데 몸통이 통과하지를 못했습니다. 맛있는 포도를 먹을 일념에 사흘을 굶어서 살을 뺀 다음 겨우 포도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포도를 실컷 먹고 나오려고 하니 배가 불러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 눈치를 살피며 다시 사흘을 굶은 다음에야 겨우 빠져나오면서 “들어갈 때나 나갈 때나 내 뱃속은 일반이로구나”라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영생의 소망이 없고 물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에 대하여 예를 들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들판에서 들소 떼의 습격을 받게 되어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으나 들소들의 걸음이 빨라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들소의 뿔에 바칠 순간 우물을 발견하여 그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우물 중간에 나무줄기가 있어서 거기에 걸려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위를 쳐다보니 아직도 들소들은 숨이 가쁜 콧김을 내쉬며 우물 속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숨을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본즉 거기에 물은 없지만 그 대신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위를 봐도 아래를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에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쥐고 있는 나무를 살펴보니 끝에 벌들이 꿀을 모아 놓은 것을 발견하자 그는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쪽 끝에를 보니 작은 쥐 2마리가 번갈아 싹싹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로 두면 얼마 안 있으면 나무가 부러져 밑에 떨어져 독사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실존을 깨닫지 못하고 꿀을 찍어 먹기에 여념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의 삶인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를 보면,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합니다. 그러면서 무엇 때문에 이 고기를 잡아야 하며 이 고기와 자신과는 무슨 원수가 있기에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고기는 노인 자신을 원수인 줄로 생각하겠지만 노인은 사실 그 고기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노인은 힘도 없고, 고기를 잡아도 노인이 먹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노인은 고기가 걸렸으니까 그 고기를 잡았습니다. 굉장히 큰 고기였습니다. 그것을 끌고 뭍으로 나올 때 상어 떼들이 와서 다 뜯어먹고 노인은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모르면 아무리 부지런히 살고 열심히 살아도 이처럼 결과는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알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 장치가 붙어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할 때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는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