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수 칼럼] 종묘 앞에서 바라본 오세훈의 눈 높이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종묘는 개발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이곳은 조선 왕조 500년의 숨결과 국가 의례가 이어져 온 성역이며, 건축과 제례, 음악이 결합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종묘 앞에서 지금 서울시의 도시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오세훈 시장은 줄곧 “보존과 개발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종묘 앞에서 이 말은 위험한 수사가 되었다. 세계유산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우선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종묘의 가치는 주변이 얼마나 화려해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침묵과 경외의 공간으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이다. 종묘 인근 재개발과 고도 완화 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서울시는 “훼손은 없다”고 해명하지만, 세계유산 관리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의도보다 결과다. 한 번 무너진 경관, 한 번 깨진 제례 동선, 한 번 흔들린 성역성은 되돌릴 수 없다. 유네스코가 경고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세훈 시장은 도시 경쟁력을 말한다. 그러나 세계적 도시는 고층 건물의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다. 런던이 웨스트민스터를, 교토가 황실 유적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개발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아야한다. 그것이 세계도시의 품격이다.
종묘는 하찮은 관광 자원이 아니다. 일시적 이벤트 공간도 아니다. 정치적 성과를 과시하는 도시 재생의 배경으로 소비될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종묘는 국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절제의 시험장이다. 서울시가 진정으로 문화유산 수도를 자처한다면, 종묘 앞에서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오세훈 시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임기 안의 가시적 성과가 중요한가, 아니면 수백 년 뒤에도 부끄럽지 않을 결정이 중요한가. 종묘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분명히 묻고 있다. 서울은 개발의 도시인가, 역사의 도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