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선 칼럼] 다핵적 백제문화권으로 대전-충남 통합을 바라보다
행정 통합을 넘어 문화권의 통합으로도 바라보는 시각 필요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대전–충남 통합 논의는 지금 ‘행정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은 행정구역을 합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 장소의 층위를 어떻게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다시 엮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이 지점이 충분히 사유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효율을 얻을 수는 있어도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백제문화권을 오늘의 지역 개념으로 환원해보면, 그 경계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유동적이다. 백제는 단일한 수도 국가가 아니었다. 한성에서 웅진으로, 다시 사비로 이동하며 정치와 문화의 중심을 옮겨간 다핵적 국가였다. 이 이동은 단순한 천도가 아니라 권력 구조와 방어 전략, 교역망과 생활 질서가 함께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백제의 문화는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길과 물을 따라 이동하며 축적되었다. 다시 말해 백제는 처음부터 ‘고정된 중심’을 가진 국가가 아니라, 이동과 접속의 구조 위에서 성립한 문화권이었다.
이 다핵적 역사 구조는 오늘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대전–충남 통합특별시의 맥락과도 놀라울 만큼 겹쳐진다. 충남도청의 소재지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다시 내포로 이전되어 왔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의 결과라기보다, 충남이라는 지역이 단일한 중심을 고정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중심을 이동시키며 자신을 재정의해온 역사를 보여준다. 공주는 웅진 백제의 방어와 귀족 정치의 중심지였고, 부여는 사비 백제의 국제성과 문화적 절정을 상징한다.
대전과 내포는 고대 백제의 왕도는 아니었지만 교통·물류·행정의 결절점으로 기능해왔다. 과거 백제가 길과 물을 따라 문화를 확장해왔듯, 오늘의 충남 역시 행정과 도시 기능을 따라 중심을 이동시키며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백제의 이동사는 오늘의 통합 논의를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은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충남의 백제 서사는 공주와 부여에 강하게 고정되어 있다. 공주와 부여 중심의 백제 연구는 유적과 왕도, 후기 백제의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분명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발굴과 전시, 학술 연구를 통해 백제는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세련된 문명으로 자리 잡았고, 백제문화는 충남을 대표하는 문화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동시에 백제를 특정 장소에 봉인된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도 낳았다. 그렇게 백제는 충남 전체의 문화라기보다, 일부 지역의 과거로 축소되어 이해되어 왔다.
이 인식의 공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천안–아산이다. 백제문화권을 공주·부여로만 설정하는 순간, 충남 북부는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한성기 백제의 시선으로 돌아가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천안과 아산은 한강 유역에서 남쪽으로 열리는 관문이었고, 내륙과 해안을 잇는 교통과 물류의 핵심 접점이었다. 곡교천과 아산만을 통한 해상 네트워크는 백제가 한강 중심의 국제 교역국가로 기능하던 시기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천안–아산은 백제의 변두리가 아니라, 백제 문화가 실제로 작동하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천안과 아산의 지역 서사에서 백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태조 이성계와 이순신 장군이라는 인물 중심의 기억이 이 지역의 역사를 대표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조선 중심의 국가 서사 속에서 백제는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소거의 대상이 되었고, 근대 이후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충절’과 ‘국난 극복’의 영웅 서사는 반복적으로 호출되었다. 여기에 산업도시이자 수도권 위성도시로 성장해온 도시 조건이 더해지며, 깊고 복합적인 고대 문화 서사는 점차 말해지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천안–아산은 ‘가장 현대적인 도시’가 되는 동시에, 고대 문화 기억이 가장 얇아진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전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대전은 근대 이후 철도와 행정, 그리고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도시다. ‘과학의 도시’, ‘연구단지의 도시’, ‘행정 중심지’라는 이미지는 대전의 중요한 성취이자 자산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현재형 정체성은 동시에 대전을 장기적인 역사 문화의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아왔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대전의 0시 축제다. 축제를 거닐다 보면 ‘대전발 0시 5분 전’이라는 근대 유행가의 가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도시의 기억은 엔터테인먼트화된 근대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대전의 문화는 일제강점기 철도 도시의 흔적이나 근대적 향수에 머문 채 소비된다. 고대와 중세의 긴 시간대는 쉽게 호출되지 않고, 대전은 기능적 중심지이자 근대적 장면의 집합으로만 인식된다. 이는 대전에 역사적 층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대전을 과학·기술·행정이라는 언어와 근대의 감각으로만 설명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전은 충남 문화권 논의 속에서도 역사적 상상력의 바깥에 놓이게 된다.
최근 국립부여박물관에 마련된 백제금동대향로 전용관은 이러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불교와 자연관, 우주관, 기술, 국제교류가 중첩된 백제 세계관의 결정체다. 한 점의 국보를 위해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백제문화가 여전히 현재형 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상징성은 묻게 한다. 이처럼 이동적이고 복합적인 문화를, 우리는 왜 여전히 특정 도시의 과거로만 한정해 이해하려 하는가란 질문을 하게 된다.
백제는 사비와 부여에만 머무는 문화가 아니다. 한성기 백제는 이미 한강 유역의 국제 교역망 속에서 성장했고, 웅진기의 방어와 재편을 거쳐 사비기의 국제성을 구축했다. 충남의 백제문화권은 왕도 중심의 완결된 결론이 아니라, 이동하고 결합하며 변형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천안–아산의 백제는 길과 물의 백제이며, 대전의 백제는 아직 충분히 발화되지 못한 연결의 층위로서의 백제다. 이 모두가 다핵적 문화권이라는 하나의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이제 대전–충남 통합 논의는 행정 통합의 차원을 넘어, 문화 정체성의 맥락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역의 문화는 개별 유적이나 사건이라는 ‘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길과 물, 이동과 교류를 따라 ‘선’으로 연결되고, 다시 생활과 도시, 공동체의 층위에서 ‘면’을 이루며 작동한다. 충남의 문화 역시 백제문화권을 중심으로 점–선–면의 구조로 재해석될 때, 비로소 하나의 살아 있는 문화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권의 재구성은 단순한 정체성 담론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 통합을 넘어 문화권의 통합으로 나아갈 때, 이는 지역 연구의 심화, 관광과 문화산업의 확장, 나아가 세계도시 전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이 된다. 백제문화가 그러했듯, 여러 중심이 공존하고 이동하며 관계를 맺는 구조는 오늘날 글로벌 도시들이 채택하는 경쟁력의 방식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대전–충남 통합 논의에서는 이러한 문화 연구의 관점과 전문성이 단순한 부수 요소가 아니라, 논의의 중심 축 중 하나로 정식 지원되고 함께 다뤄지기를 기대한다. 행정과 제도가 통합의 뼈대라면, 문화는 그 안을 순환하는 혈관이자 신경이다. 통합의 성패는 결국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백제가 그러했듯, 다핵적 구조 속에서 연결되고 확장되는 문화만이 미래로 마주할 새로운 대전-충남 특별시 시대의 통합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