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영 킹메이커' 이해찬 전 총리 별세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영면... 향년 74세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정권 탄생의 주역
[충청뉴스 성희제 기자] 충남 청양 출신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고인은 베트남 출장 중인 23일(현지시간) 심근경색 증상으로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25일 오후 2시 48분 베트남 병원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잠에 들었다.
고인은 지난 1988년 평화민주당과 연을 맺은 뒤 40여 년, 민주주의를 위한 외길을 걸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등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배출한 4명의 대통령을 만든 최고의 ‘킹 메이커’이기도 했다.
7선 국회의원으로 제13·14·15·16·17·19·20대 국회의원, 김대중 정부의 제38대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제2대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제3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역임했으며, 한겨레 신문 창간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고인의 삶은 반추하면 ‘투쟁의 역사’로 요약된다. 1952년 청양의 한 면장 집안에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대학 진학 후 ‘투사’와 같은 삶을 이어왔다.
1972년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2년 만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첫 옥고를 치렀다.
이후 또 다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던 고인은, 대학 입학 14년 만인 1985년이 돼서야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다.
고인의 정치여정을 반추하면 민주진보진영 영욕의 세월과 궤를 함께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 총리는 대학 졸업 후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DJ의 손에 이끌려 정계에 투신한다.
서울 관악을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해, 김종인(민주정의당)·김수한(통일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DJ 집권 후에는 만 45세에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당시 고인은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책임 총리’로서 굳건한 모습으로 민주진보진영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총리 취임 후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차떼기당 맞지 않느냐”고 야당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에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로 활동하며, 민주진영 ‘20년 집권 플랜’을 기치로 21대 총선 대승을 거뒀다.
이후 고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고비마다 그를 엄호하며, 이재명 정부 탄생의 ‘산파’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인의 시신은 26일 밤 베트남에서 비행기를 통해 운구 될 예정이다.
27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