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의 품질이다
통합의 목적은 ‘더 큰 정부’가 아니라 ‘더 큰 자치’여야 한다 통합특별시 논의, 권한의 이동과 자치의 실질부터 점검해야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민주당이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 논의는 이제 선언의 단계를 넘어, 입법이라는 구체적 국면으로 진입했다. 행정구역 개편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지역의 권한 구조와 자치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그만큼 충분한 검토와 숙의 없이 추진되는 졸속 입법은 경계되어야 한다.
통합특별시의 공식 명칭은 ‘충남대전특별시’이지만, 약칭은 ‘대전특별시’로 정해졌다. 법안의 이름에는 ‘경제과학중심도시 조성’이라는 목표가 담겼고, 280여 개의 특례와 시·군 재정권한 보완 장치도 포함됐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면, 통합의 외형과 상징, 정책 브랜드가 대전에 수렴되고, 충남의 시·군은 그 내부 구성 단위로 재배치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행정체제 개편은 구호가 아니라 권한이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에 집중되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통합의 본질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권한의 재배치이다. 문제는 권한의 재배치가 분산과 자치 강화의 방향이 아니라 광역 집중이라는 점이다.
겉으로는 분권, 안으로는 집중: 통합특별시가 만드는 역설
대전충남통합특별시는 중앙정부와 지방의 관계만 놓고 보면 분권처럼 비칠 수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 일부가 통합특별시로 이양되고, 광역 차원의 자율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권의 핵심은 ‘중앙에서 지방으로’라는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권한이 내려온 뒤, 그것이 지방 내부에서 어떻게 배분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통합특별시는 중앙으로부터 이양받은 권한을 시·군으로 재분산하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그 권한이 통합특별시 본청에 집중되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분권처럼 보이지만, 통합특별시와 내부 시·군의 관계에서는 권한 집중과 자치의 후퇴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지방분권의 진전이 아니라, 지방 내부의 새로운 중앙집권을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
진정한 분권은 중앙의 권한을 광역으로 옮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권한이 다시 기초자치단체와 주민의 선택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점이 보장되지 않는 통합은 분권이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자치의 실질을 약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특별시 모델은 서울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특별시 체제는 보편적 행정모델이 아니다. 이는 단일 초대도시를 전제로 한 제도이며, 인구·산업·행정 수요가 하나의 연속된 도시 공간에 고도로 집적된 구조에서 작동한다. 서울의 자치구 구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치구는 법적으로 기초자치단체이지만, 도시계획·교통·주택·환경·재난 등 핵심 정책의 설계와 결정은 서울시가 맡는다. 자치구는 집행과 관리의 단위로 기능한다. 이는 특정 시장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특별시라는 제도 자체의 구조적 속성이다.
이 모델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 공간을 전제로 할 때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를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해당 지역의 행정 수요와 공간 구조의 차이를 무시하는 접근이 될 수 있다.
충남은 서울이 아니다: 도농복합·다핵 구조의 광역체계
충남은 단일 대도시가 아니다. 산업도시와 농촌 지역이 공존하고, 내륙과 해안, 산단과 농업 지역이 혼재된 전형적인 도농복합 광역체다. 천안·아산권, 서산·당진권, 보령·서천권, 논산·계룡권 등 여러 생활권이 분산된 다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광역정부가 직접 집행자로 나서는 특별시 모델보다, 시·군이 지역 문제의 1차 설계자가 되고 광역이 이를 조정·지원하는 도 체제가 더 합리적으로 작동해 왔다. 충남의 행정 수요는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고, 지역별로 성격과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를 하나의 광역 본청 중심으로 통합할 경우, 지역 맞춤형 정책 설계는 구조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광역 집중이 낳는 시·군 자치의 약화
광역시 소속 군의 사례는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분명히 보여준다. 법적으로는 기초자치단체이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광역시의 전략과 정책 방향에 강하게 종속된다. 도시계획과 산업 방향은 광역이 결정하고, 군은 이를 집행하는 구조가 고착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독자 전략을 설계할 공간은 도 소속 시·군에 비해 현저히 좁다.
통합특별시 역시 예외가 되기 어렵다. 약칭을 ‘대전특별시’로 정한 결정은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라, 통합 이후 정책 설계와 예산 배분의 중심이 어디에 놓일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별시장이 정책과 재정의 중심에 서고, 시·군은 하위 집행 단위로 재편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내재돼 있다. “특례가 많다”는 설명만으로는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
경제과학중심도시라면, 역할 분담이 분명해야 한다
특별법의 목적에는 ‘경제과학중심도시 조성’이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그 경제의 중심은 어디인가. 충남에서 산업·물류·인구·고용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도시는 천안이다. 인구 7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이자, 충청권 산업벨트의 핵심 거점이다.
그럼에도 제출된 법안에서는 천안의 역할과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경제과학중심도시를 말하면서 충남 최대 산업·경제 도시의 기능과 권한을 법률에 명시하지 않는 것은 구조적 불균형이다. 역할 분담 없는 통합은 상생이 아니라 흡수에 가깝다.
특례시는 선택이 아니라 통합의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 특례시 또는 특례시급 준 특례 부여이다. 특례의 본질은 명칭이 아니라 결정권의 범위이다. 광역 본청을 거치지 않고, 대도시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무를 법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특례의 핵심이다.
천안은 현행 인구 100만 기준의 특례시 요건에는 미달하지만, 산업 규모와 생활권 인구, 교통·물류 결절성, 행정 수요의 밀도를 고려하면 특례시급 권한 부여의 필요성이 매우 높다. 통합특별시를 추진한다면, 그 내부의 대도시에 대해 자치권을 강화할 제도적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 필수이다.
구체적으로는 ▲대도시 행정수요를 반영한 특례시급 지위의 법적 명문화, ▲산업·도시계획·대규모 개발 등 핵심 사무에 대한 직접 결정권 보장, ▲지역에서 발생한 성장과 재원이 다시 지역에 투자되는 재정 환류 원칙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 없이는 통합의 비용이 고스란히 기초자치의 권한 상실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입법의 품질’이다
행정통합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통합의 비용은 조직 통폐합이 아니라, 기초자치의 권한과 책임이 흡수·축소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번 특별시 체제로 들어가면, 다시 도–시·군 구조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법안이 제출된 이상, 이제 중요한 것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와 수정이 이뤄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졸속 처리를 막기 위해 지역 국회의원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충남도와 천안시 차원에서 공동의 입장을 정리해 국회에 전달해야 한다. 통합을 전제로 하되, 자치의 후퇴를 막을 조건과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책임 있는 대응이다.
통합의 목적은 ‘더 큰 정부’가 아니라 ‘더 큰 자치’여야 한다
대전과 충남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협력의 해법이 반드시 서울형 특별시나 광역시와 유사한 행정구역 통합일 필요는 없다. 입법논의 과정에서 특별도 체제 등 시·군 자치를 유지하면서도 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행정의 효율이 자치의 후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더 큰 정부’가 아니라, 지역실정에 맞는 ‘더 튼튼한 자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