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용 칼럼] "예언 장사꾼들"

2026-02-09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2026년 다보스 포럼에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를 향해 서늘한 경고를 던졌다. 

인사하는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에이전트'이며, 인간의 언어를 장악했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말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신탁처럼 들렸다.

그의 대담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일론 머스크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머스크 역시 "내년이면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이라거나 "화성 이주만이 멸종을 피할 유일한 길"이라는 극단적 서사를 반복한다. 

OpenAI의 샘 올트먼은 인공일반지능(AGI)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통제할 유일한 기술을 자신들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Singularity) 즉,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점이 오면 인간이 기계와 합쳐져 영생할 것이라 예언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희박한 '가능성'을 필연적인 '개연성'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가능성(Possibility)은 확률이 0이 아니면 존재한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장악할 가능성, 특이점이 올 가능성, 화성 이주가 필요할 가능성이 모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희박한 가능성을 마치 입증된 개연성처럼 포장한다는 데 있다.

개연성(Probability)은 충분한 이유와 필연적 흐름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하라리는 "언어 장악 = 정체성 붕괴"라는 등식을 제시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머스크가 제시하는 구체적 시한들, 내년의 휴머노이드 로봇, 5년 내 스마트폰 소멸은 물리적 실현 가능성만 있을 뿐, 정교한 데이터로 뒷받침된 개연성은 부족하다.

이들이 구사하는 화법은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다. 먼저 거대한 공포나 환상을 제시해 대중을 압도한다. "인류의 정체성이 붕괴할 것이다", "멸종을 피하려면 화성으로 가야 한다" 이런 극단적 서사는 대중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자신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암묵적 권위를 세운다. 과거의 성취(전기차, 재사용 로켓)나 학문적 권위(역사학자, 미래학자)를 지렛대 삼아, 검증되지 않은 미래 예측에 신뢰를 덧입힌다. 이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경외심의 유도다.

문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반박당할 위험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예언이 빗나가도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 뿐"이라 변명할 수 있고, 일부라도 맞으면 "내가 예견했던 바"라며 권위를 공고히 한다. 이것은 일종의 지적 가스라이팅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담보로 현재의 지적 주도권을 챙기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예언 장사꾼’에 가깝다. 미래를 상품화해 현재의 권위를 확보한다. 그들의 화려한 서사가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구체적 인과관계도, 검증 가능한 데이터도 부족하다. 대신 공포와 경외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예측 자체가 아니다. AI 시대의 변화는 분명 올 것이고, 그 속에는 위험도 기회도 있다. 진짜 위험은 희박한 가능성을 필연적 개연성으로 둔갑시키는 그들의 화법이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점이다.

통찰이란 누군가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미는 화려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무엇이 입증된 사실이고 무엇이 배제할 수 없는 희망인지를 구분해내는 안목이다. 

예언 장사꾼들의 화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들이 말하는 '시기'가 아니라 그 이면의 '본질적 가능성'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무엇이 나에게 유효한 미래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