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 칼럼] 흔들리지 않는 본질, 교육은 정치가 아니라 미래다

2026-02-20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 국민의 환호를 받았던 한 배드민턴 선수의 행보는 무척 이례적이었다.

강미애

우승 직후 쏟아지는 수많은 방송 출연 요청과 천문학적인 액수의 광고 제안을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배드민턴 선수"라는 것이었다. 광고 촬영에 마음을 빼앗겨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아직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남았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이 단호한 거절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 '본질'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 사례는 오늘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과 깊이 닮아 있다. 교육 또한 세상의 화려한 유혹이나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배움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부른다. 이는 교육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의 백 년 뒤를 좌우하는 가장 장기적이고 중차대한 과제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막중한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후보의 교육 철학보다 정치적 이념과 성향이 먼저 거론되는 서글픈 현실이 반복되곤 한다.

이제는 교육계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수인가, 진보인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아이들을 위한 "교육 정책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다.

헌법이 명시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단순히 지켜야 할 원칙을 넘어, 우리 교육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와 같다.

교육은 결코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학생의 올바른 성장과 배움의 권리를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교육감을 '정치인'이 아닌 '교육 행정가'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의 교실이 안정되고, 아이들의 학력이 향상되며, 교육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것, 그리고 학생들의 안전과 미래 역량을 키워내는 일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행정력과 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방향은 한 세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교육감을 선출하는 기준 역시 화려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깊이와 정책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엄중히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결국 교육은 교육 그 자체로 평가받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안세영 선수가 광고 촬영장 대신 땀 냄새 가득한 훈련장을 선택했듯, 교육 행정가 또한 정치적 입장을 앞세우기보다 헌법이 요구하는 중립성을 바탕으로 학생을 위한 정책 실현에 매진해야 한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오직 아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정책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