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원성수의 세종다운 교육' 에필로그
"언젠가 세종의 어느 날,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 학교와 이 도시의 교육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기에 부끄럽지 않은 터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원고의 마지막 장을 정리하던 어느 날, 우연히 오래된 메모 하나를 다시 읽게 되었다. 총장 취임 초기, 세종의 한 중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급히 적어 내려간 문장이었다.
“교육은 결국 제도나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흔적이다.”
그때는 조금 막연한 감상이었는데, 이 책을 마무리하는 지금에 와서야 그 문장의 의미를 조금은 더 또렷하게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통계와 제도, 정책과 조직을 이야기하고 나서도, 결국 끝에 남는 것은 아이 한 명의 눈빛, 교사 한 사람의 목소리, 부모 한 사람의 한숨과 미소였다.
세종의 유치원 교실에서 만난 한 아이를 떠올린다. 그날 아이는 블록을 쌓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교사가 다가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저기 나뭇잎이요. 바람 불 때마다 계속 모양이 달라져요.”
짧은 대화였지만, 필자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교사가 “딴 생각 하지 말고 블록을 쌓아라”라고 다그쳤다면, 우리는 그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움직임을 영영 몰랐을지도 모른다. 교육은 때때로, 한 아이의 엉뚱해 보이는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제주 교사 추모 집회에서 만난 젊은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광화문 광장, 한낮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너무 큰데, 교실에 서는 일이 이토록 두려워질 줄 몰랐습니다.”
그 말 속에는 분노와 슬픔, 좌절과 책임감이 뒤섞여 있었다. 공교육의 미래를 걱정하기 전에, 먼저 이 젊은 교사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교사의 눈빛이 꺼지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 필자의 막내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예술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택했을 때, 필자 역시 부모로서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꼈다.
혹시 이 선택이 아이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선택은 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지치는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패를 감당하는 힘이 무엇인지, 딸은 그 시간을 통해 몸으로 배워 갔다.
부모로서 필자가 한 일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덜 조급해하려 애쓰고, “그래도 네가 선택한 길이니 끝까지 한 번 걸어 보자”라고 말해 준 것뿐이었다.
이 세 사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보던 유치원생,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가 두려운 젊은 교사, 예고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한 딸.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필자에게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선물해 주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켜 그답게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높은 소득, 이 모든 것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으며, 실패와 좌절 앞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협력과 연대 속에서 함께 길을 찾아갈 줄 아는 태도. 우리가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것은 결국 이런 ‘사람다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입시 문제를 따로, 사교육 문제를 따로, 교권 문제를 따로, 특수교육 문제를 따로 다룬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한 아이의 삶 안에서는 이 모든 문제가 동시에, 한꺼번에 얽혀 나타난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 부모의 양육 신념과 불안, 학교의 교육과정과 평가 방식, 교사의 역량과 소진, 주거와 돌봄, 지역사회의 지원 체계까지. 그래서 교육은 어느 한 부처나 한 기관, 한 전문가 집단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교육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공의 과제이며, ‘누가’가 아니라 ‘함께’가 답이라는 것.”
부모에게는, ‘내 아이만 잘 되는 길’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사람답게 자라는 길’을 기꺼이 선택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교사에게는, 지금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어 달라고,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 동료와 학부모,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선거 주기와 여론의 파도에만 휘둘리지 말고 10년, 20년 뒤의 교실을 상상하며 오늘의 제도를 설계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를 세종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세종은 여전히, 대한민국 교육의 중요한 실험장이자 희망의 무대입니다”라고.
행복과 학력, 수월성과 형평성, 자율성과 책임, 지역과 세계.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고민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도시, 그래서 때로는 더 힘들고 더 혼란스러운 도시.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종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변화 하나가 앞으로 대한민국 교육 전체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도시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개혁이 아니어도 좋다. 한 유치원 교실에서, 한 초등학교 독서 수업에서, 한 중학교 학급회의에서, 한 고등학교 진로상담실 안에서, 그리고 한 가정의 저녁 식탁에서… 교육의 첫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작은 시도들이 곳곳에서 시작될 때, 그것이 모여 미래 교육의 큰 물줄기를 바꿔 놓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소망을 조심스레 품어 본다.
언젠가 세종의 어느 날,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 학교와 이 도시의 교육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기에 부끄럽지 않은 터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날을 향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수많은 걱정을 품고도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려 애쓰는 부모님들께, ‘당신이 이미 좋은 교육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는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교육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완성된 미래 교육의 모델을 찾는 대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선택을 하는 일. 그 선택들이 이어질 때, 비로소 미래 교육의 비전과 지표는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얼굴 위에, 교실과 마을의 풍경 속에 조용히 새겨지게 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이 책이 아주 작은 이정표 하나쯤은 되어 주기를 바라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