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먹고사는, 내가 행복한 일

토마토가 만난 사람_브로콜리 식당, 황동아 씨

2013-12-13     글_사진 성수진

대흥로 121번 길. 한적한 은행나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상 좋은’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작년에 문을 연 브로콜리 식당이다. 느긋하게 음식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만 찾을 수 있는 곳. 어떤 날에는 한 시간이 넘게 음식을 기다려야 하는 곳. 그곳을 지키는 황동아 씨는 천천히 행복하게 음식을 만든다.
‘남 먹일 때’ 행복한 ‘브로콜리 넘버 원’
‘브로콜리’라는 이름은 청소년 쉼터에서 일하며 만난 아이들이 지어 주었다. 쉼터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가장 높은 직급으로 보이고,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황동아 씨를 아이들은 ‘브로콜리 넘버 원’이라고 불렀다.

황동아 씨는 사회복지 계통에서, 특히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는 쉼터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쉼터에서 일하면 아이들에게 밥을 지원하는 일을 기본적으로 하지만, 황동아 씨에게는 그 일이 더 특별했다.

“보통 아이들 소풍 간다고 하면 엄마가 선생님 것, 친구 것까지 김밥 싸주잖아요. 가출한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부족해요. 일반적인 가정에서 엄마들이 신경 쓰는 것들을 해주고 싶어서 애들이 소풍 갈 때면 김밥을 싸 줬어요. 명절 때도 가족적인 분위기 내려고 전도 부치고 그랬어요. 센터에 있는 다른 분들은 가정일이 많은데 저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애들이랑 같이 명절, 연휴 보냈죠.”

워낙에 먹는 것, 음식 하는 것을 좋아했어도 식당을 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됐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사명으로 느끼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생각해 보았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질문했다.

“나는 뭘 할 때 행복해 보여? 뭘 할 때 어렵거나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안 지어?”
한 직원의 대답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음식 해서 남 먹일 때.”
요리를 배워 보고 싶어 퇴근 후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요리는 그저 취미 생활이었다.

음식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
“사무실에서 밤에 혼자 남아 있다가 반도네온 연주자가 맨발로 연주하는 동영상을 봤어요. 악기와 한 몸이 되어 감정에 취한 모습을 보고 나도 한 번 이렇게 살아봐야 하지 않나 싶었죠.”

고되게 일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섣불리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표를 내고 다른 일을 하다 다시 돌아온다 했을 때 자신을 받아줄 만한 일이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활동하는 분야에서 나쁘지 않은 위치에 있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또, 자신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는 게 무책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또 생각해본 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뭘로 남길까예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라.’라고 남길 것 같았거든요. 대책도 없이 사표 썼어요.”

식당을 차리려고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몇 달간 쉴 계획이었다. 쉬는 사이, 황동아 씨의 음식 솜씨를 아는 사람이, 딸이 결혼한다며 하객 도시락을 부탁했다. 솜씨 좋은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날 저녁부터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주문이 늘어나며 친구와 함께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만들고 디저트도 만들기 시작했다.

브로콜리 식당과의 인연은, 자주 가던 카페 ‘느린나무’에서 시작됐다. 느린나무 사장님에게 쿠키나 피칸 파이를 받아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더니, 뜻밖에도 느린나무 2호점이 주방으로 쓰던 공간에서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

“느린나무 사장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세요. 이 공간도 원래는 작업실로만 쓰다가, 그분이 음식을 팔아보는 게 어떠냐 해서 브로콜리 식당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원래 음식 통해서 사람들 하고 교류하고 싶었으니까요. 오케이 하고 식당 차렸죠.”

느릿느릿 돌아돌아 문을 연 브로콜리 식당. 지금 황동아 씨는 브로콜리 식당에서 음식으로 사람들과 만난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손님들과 음식으로 관계 맺으면서 신뢰를 쌓아 메뉴판을 없애는 것이 목표다.

“제철 재료로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저를 믿고 먹으러 오는 그런 식당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이에요. 메뉴가 있지만, 차차 줄여갈 거예요. 뭐가 맛있냐고요? 손님들은 크림소스 떡볶이, 리코타 샐러드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는, 제일 안 나가는 메뉴이긴 하지만 카레밥을 제일 많이 만들어놔요. 정성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양파를 40분 볶고…. 만들면 제가 거의 다 먹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