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강의 물줄기는 배신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기록이다

- 시민은 '영리한 정객'보다 '의리 있는 일꾼'을 원한다

2026-04-18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세종시 정치권을 감싸고 있는 ‘배신’과 ‘도리’의 담론은 비단 오늘날의 지엽적인 갈등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정치는 늘 권력이라는 효율과 신뢰라는 도덕 사이의 줄타기였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찰나의 유불리를 위해 신의를 저버린 정치는 결국 그 끝이 비루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삼국시대의 김재규나 궁예의 부하들을 떠올리기 전, 훨씬 더 상징적인 인물인 여포(呂布)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대 최고의 무력을 가졌던 여포는 그는 자신을 아들처럼 아꼈던 정원을 배신하여 죽이고 동탁에게 갔으며, 다시 동탁을 죽이고 권력의 핵심에 다가갔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의 실리'를 선택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조조에게 사로잡혔을 때, 곁에 있던 유비는 단 한마디를 던졌다. "조공(조조)께서는 여포가 정원과 동탁을 어떻게 섬겼는지 잊으셨습니까?"

이 한마디에 조조는 망설임 없이 처형을 명했다. 배신으로 쌓아 올린 성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 주인을 배신한다. 자신을 키워준 손길을 꺾은 자의 손을, 그 누가 기꺼이 다시 잡아주겠는가.

정치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바꾸는 업(業)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함께 꿈을 꾸며,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 속에서 피어난 '신의'는 정치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마지막 보루다.

오늘날 세종의 시민들이 묻는 질문은 명확하다. "나를 위해 헌신한 동지를 등진 자가, 과연 이름도 모르는 시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는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돌리는 선택은 차가운 계산일 뿐, 따뜻한 정치는 아니다. 은혜를 입었다면 갚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함께 길을 걸었다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대인(大人)의 풍모다.

꽃은 지기 위해 피지만, 그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정치인의 권력 또한 유한하다. 언젠가 그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참 비겁했던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도리를 지켰던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세종의 정치가 비릿한 배신의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도리의 향기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역사는 늘 느리게 걷지만, 결코 길을 잘못 들지 않는다.

결국 시민들은 알고 있다. 배신의 길은 화려해 보일지라도 끝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며, 도리의 길은 험난할지라도 시민의 마음이라는 넓은 바다에 닿을 것임을.

"도리를 저버린 자의 승리는 기록에 남지만, 도리를 지킨 자의 삶은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