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서구 예술부터 한국 근대 미술까지"...역사적 흐름 조망

2026-05-22     이성현 기자
로댕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술관이 개관 이후 축적한 세계적 거장들의 기증 소장품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전위예술이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한국적 서정추상’으로 변용됐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분석형 특별전을 선보였다.

KAIST는 소장품전 ‘로댕 드 파리(Rodin de Paris)’와 고(故) 류경채 화백의 회고전 ‘마음의 시(The Poetics of Emotion)’를 미술관 제2·3전시실에서 동시 진행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제3전시실의 ‘로댕 드 파리’전은 2021년부터 시작된 한 독지가의 지속적인 기증을 통해 확보한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 조각 '기둥 곁의 아담을 위한 습작'(1912년 제작 추정, 1969년 주조)을 중심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비둘기', 마르크 샤갈의 판화 '노란 광대가 있는 서커스'를 비롯해 조르주 브라크, 외젠 들라크루아 등 거장 10인의 작품을 통해 당대 파리 전위예술의 다층적 단면을 재구성한다.

미술사적으로 1900년 전후의 파리는 국적을 초월한 예술가 집단인 ‘파리파(Ecole de Paris)’가 형성될 만큼 화려한 예술의 중심지 였으나 이번 전시에선 그 이면에 공존했던 예술가 개인의 사회적 소외와 내면적 상처 등 인간 중심의 본질적 가치에 주목하도록 서사를 배치했다.

특히 로댕의 조각은 대표작 '지옥의 문'을 구성하는 부분 축소 모형으로서 표면의 굴곡이 빛과 상호작용해 인간의 고뇌를 시각화하는데 미술관 측은 이러한 기증 유산의 공공 자산화를 토대로 서구의 예술 혁신이 동아시아 주변부로 확산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연계된 제2전시실의 ‘마음의 시’ 전은 서구의 최신 미술 사조가 일본을 거쳐 식민지 조선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학적 굴절과 독자적 정착을 분석한다.

서구의 급진적 전위예술이 일제강점기라는 제도적 억압 속에서 절제된 형태로 수용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 속에서 고 류경채 화백은 직설적 실험 대신 내면의 절제를 통한 ‘한국적 서정추상’이라는 독창적 회화 양식을 구축하며 시대적 제약을 정면 돌파했다.

류 화백의 연대기적 작품 세계는 서양의 기하학적·이성적 색면 추상과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초기에는 대상을 소박하게 재현하는 구상 풍경에서 출발해 1960년대 두터운 마티에르(질감)를 실험했으나, 1970년대 이후 물감을 긁어내 화면을 얇게 만드는 모노톤 기법을 완성했다.

만년(말년)에는 원과 마름모 등 기하학적 요소를 결합하면서도 화면 내부에 미세한 여백과 ‘숨구멍’을 보존함으로써 서구의 형식주의 추상과 차별화되는 사계절의 풍토적 미감과 내면의 시정을 응축한 ‘마음의 풍경’을 완성해 냈다.

이번 전시는 고(故)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2022년 미술관 건립을 위해 기증한 소장품 중 류 화백의 1960년대 후반부터 만년까지의 대표작 33점 전량을 최초로 일반에 일제히 공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사료 가치가 높다.

전시장에는 유족 협찬을 통해 확보한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대통령상장 실물 원본과 변혁기 그가 직접 집필한 중·고교 미술 교과서 등이 입체적으로 배치돼 국전의 핵심 리더이자 교육 행정가로서 한국 미술의 제도화를 이끈 류 화백의 다면적 업적을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두 기획전의 병치 배치는 ‘서구 중심지의 미학적 아방가르드가 동아시아 주변부로 전이될 때 어떻게 로컬 맥락에 맞추어 절제되고 독자적으로 재구성되는가’라는 거시적 담론을 관통하고 있다.

석현정 미술관장(산업디자인학과장)은 “KAIST 미술관이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기획한 전시 공간에서 세계와 한국의 예술 세계관을 함께 경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파리 컬렉션전은 오는 10월 16일까지, 류 화백 기획전은 내년 2월 26일까지 대전 KAIST 미술관에서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