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암세포 성장 막는 ‘천연 브레이크’ 기전 세계 최초 규명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국내 연구진이 식물성 기름 등에 풍부한 필수 불포화지방산이 체내에서 대사되며 생성되는 물질인 ‘13-HODE’가 엠토르 단백질에 직접 결합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천연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우리 몸속 단백질인 ‘엠토르(mTOR)’는 암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되어 세포의 성장과 증식, 전이를 촉진하는 핵심 조절 인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과학과 김세윤 교수 연구팀이 고려대학교와 체내 지질 대사물질인 13-HODE가 암 성장의 핵심 조절 인자인 엠토르의 활성을 직접 저해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기존 학계에서는 엠토르 단백질이 세포 내 대사물질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을 제기해 왔으나, 구체적인 분자 기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대사체 스크리닝 기술을 통해 엠토르 단백질에 직접 결합하는 13-HODE 지질 분자를 최초로 동정(분류·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컴퓨터 기반의 분자 결합 시뮬레이션과 질량분석 기술을 활용해 13-HODE가 엠토르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물리적으로 달라붙어 기능을 원천 차단하는 작동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검증해 냈다.
오메가-6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이 체내 효소 ‘ALOX15’에 의해 산화되면서 생성되는 13-HODE는 실제 암세포 통제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유방암과 대장암 세포에서 13-HODE의 농도가 매우 낮게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암세포가 자신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13-HODE를 만드는 효소인 ALOX15의 발현을 강력하게 억제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연구팀이 암세포와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인위적으로 ALOX15 효소 발현을 늘리거나 고농도의 13-HODE를 처리하여 지질 대사 경로를 회복시켰을 때 종양의 크기가 획기적으로 감소하며 암세포 성장이 지연되는 일련의 과정을 입증해 냈다.
이는 인공 화합물이 아닌 인체 내 천연 대사물질이 암 성장의 핵심 경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 독창적인 사례다. 연구 과정에서 세포 내 미량 존재하는 지질 대사물질을 정량 분석하고 생화학적 기법으로 결합 반응을 검증하는 데 높은 난이도와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연구 성과는 새로운 엠토르 연구 접근법과 불포화지방산 암 대사의 중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엠토르 분야 석학인 미국 일리노이대 지에 첸(Jie Chen) 교수는 저널 프리뷰를 통해 “암세포 제어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탁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KAIST 박승주 박사와 김세라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논문은 화학생물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셀 케미컬 바이올로지’ 5월호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어 게재됐다.
김세윤 교수는 “향후 암세포 특이적으로 13-HODE 대사 경로를 재구성하거나 병용 투여하는 차세대 대사 기반 항암 치료 전략뿐만 아니라, 엠토르 과활성으로 유발되는 염증 및 노화 관련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도 이번 원천 기술이 폭넓게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